전라남도 기념물 제112호 나주의 정자 ‘영모정’. 사진=박옥화

나주시 다시면 회진리 90번지에 위치한 ‘영모정’은 영산강을 굽어보는 언덕 위에 자리 잡고 있다. 전라남도 기념물 제112호인 이곳은 한 가문의 지극한 효심과 조선시대 문학적 풍류가 교차하는 특별한 공간이다.

영모정은 1520년 귀래정 임붕(1486~1553)이 처음 건립했다. 건립 당시에는 임붕의 호를 따 ‘귀래정’으로 불렸으나, 선생이 작고하자 아들인 임복과 임진이 아버지를 기리는 마음을 담아 1555년 건물을 중수하며 이름을 영모정으로 바꿨다. ‘어버이를 길이 추모한다’는 뜻의 영모(永慕)는 자식들의 절절한 효심을 상징한다.

건물은 앞면 3칸, 옆면 2칸 규모의 팔작지붕 구조로, 왼쪽 1칸은 온돌방, 오른쪽 2칸은 마루로 구성됐다. 예로부터 명승으로 이름이 알려져 찾는 이들의 발길이 잦았으며, 정자 주변을 병풍처럼 둘러싼 수백 년 된 노거수들은 강바람과 함께 방문객에게 고즈넉한 휴식처를 제공한다.

영모정의 정면 모습. 사진=박옥화

정자 주변에는 조부 임붕과 손자 임제의 인연을 증언하는 ‘귀래정나주임공붕유허비’와 ‘백호임제선생기념비’가 있으며, 국가유산청 기록에도 영모정은 백호 임제가 시를 짓고 교류하던 장소로 명시되어 있다.

조부 임붕과 손자 임제의 인연을 증언하는 ‘귀래정나주임공붕유허비’와 ‘백호임제선생기념비’ 모습. 사진=박옥화

영모정은 ‘효(孝)’라는 뿌리에서 백호 임제라는 문학의 꽃을 피워낸 공간이다. 조부 임붕 선생에 대한 효심이 정자를 세운 근간이 되었다면, 손자인 백호 임제(1549~1587)는 이곳을 무대로 시대와 불화하면서도 자유분방하고 거침없는 자신만의 문학 세계를 구축했다. 정자 아래 뜰에는 나주(옛 금성)의 풍경과 월정봉, 영산강의 물줄기를 노래하며 선생 특유의 기개를 고스란히 담아낸 ‘금성곡(錦城曲)’ 시비가 자리하고 있다. 영모정은 임붕(조부), 임진(부친), 임제로 이어지는 3대의 삶이 밀접하게 서린 공간이기도 하다.

백호 임제 선생의 ‘금성곡’ 시비. 사진=박옥화

영모정은 단순히 정자라는 건물에 그치지 않는다. 정자 마당에는 풍암 선생이 선조 귀래정공 임붕을 추모하며 새긴 비문이 함께 자리해, 이곳이 조상을 기리고 선비들 간 문학적 교류가 활발히 오갔던 역사의 현장임을 증명하고 있다.

풍암 선생이 선조 귀래정공 임붕을 추모하며 새긴 비문. 사진=박옥화

영모정을 둘러본 후에는 백호문학관과 천연염색박물관을 산책하고 인근의 장춘정, 복암리 고분군을 방문하는 탐방 코스를 추천한다. 구진포 장어 거리나 영산포 홍어 거리에서 나주의 깊은 맛을 느끼는 것도 좋다.

이번 여름, 인문학적 가치와 자연이 어우러진 나주에서 ‘2026 나주 방문의 해’를 맞아 영산강변의 정자를 여행하며 특별한 추억을 만들어 보길 권한다.

영모정에서 굽어본 영산강 풍경. 사진=박옥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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