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바위를 병풍 삼아 전라남도 기념물 ‘장춘정(藏春亭)’이 날아갈 듯한 자태로 서 있다. 사진=박옥화

지난 1호의 금안리 쌍계정이 주민들과 숨 쉬는 ‘상생과 화합’의 공간이었다면, 이번에 찾은 곳은 초여름 푸른 기운이 짙어가는 영산강변이다. 강물이 활처럼 굽이쳐 흐르는 다시면 죽산리 화동마을 언덕 위, 거대한 바위를 병풍 삼아 전라남도 기념물 ‘장춘정(藏春亭)’이 날아갈 듯한 자태로 서 있다.

‘장춘(藏春)’이라는 이름에는 자연을 대하는 선조들의 낭만이 담겨 있다. 정자 주위로 겨울에도 푸름을 잃지 않는 동백나무 숲과 사시장철 피어나는 꽃들이 가득하여 ‘항상 봄을 머금고 있는 듯하다’는 뜻이다.

진입로 입구에는 조선 시대 정3품 통정대부 품계를 받고 도호부사를 지냈던 고흥 류씨 류충정(柳忠貞) 선생의 행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장춘 류공 유장비’가 방문객을 먼저 맞이한다.

장춘정은 조선 명종 때인 1561년, 류충정 선생이 조정의 정국에서 벗어나 고향의 부모를 봉양하기 위해 낙향하면서 건립되었다. 영산강변의 빼어난 풍광 속에 자리 잡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단아한 팔작지붕 정자로, 당대 석학 고봉 기대승이 지은 「장춘정기(藏春亭記)」를 통해 구체적인 건립 연대와 내력이 명확히 전해진다.

장춘정의 유래를 기록한 비문. 사진=박옥화

건립 이후 1818년과 1930년 두 차례 중수가 있었으나 건물의 굵직한 뼈대와 가구 구조는 여전히 건실하다. 특히 온돌방을 갖춘 유실형(有室形) 정자 구조를 바탕으로 대청의 우물마루, 빗살창, 부채모양의 선자 서까래와 활주 등 조선 중·후기 정자 건축의 세련미와 전통적 구조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오랜 세월 속에서도 옛 모습을 고스란히 지켜온 뛰어난 보존성이 장춘정의 가장 큰 건축적 가치다.

과거 이 마루에는 건립자인 류충정 선생과 그의 외조카이자 나주가 낳은 천재 시인 백호 임제를 비롯해 면앙 송순, 고봉 기대승, 제봉 고경명 등 당대 최고의 문인들과 석학들이 모여들었다. 쌍계정이 지역 공동체의 자치 규약을 키워낸 화합의 장이었다면, 장춘정은 영산강의 비경을 배경 삼아 조선 중기 호남 가사문학과 성리학의 깊이를 더해간 ‘인문학의 산실’이었던 셈이다.

정자 마당에는 오랜 세월의 무게를 이겨내며 비스듬히 누운 팽나무와 느티나무가 서 있다. 조경수의 백미는 단연 정자 바로 옆을 지키고 있는 아름드리 고목 은행나무다. 네 줄기의 가지가 자라나 하나의 원줄기로 결합된 독특한 ‘연리목(連理木)’ 형태를 띠고 있다. 건립 당시에 심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이 고목들은 현재 모두 보호수로 지정되어 장춘정의 역사적 가치를 더해준다.

네 줄기의 가지가 자라나 하나의 원줄기로 결합된 독특한 ‘연리목(連理木)’ 형태를 띠고 있는 고목 은행나무. 사진=박옥화
보호수로 지정되어 장춘정의 역사적 가치를 더해주는 팽나무, 느티나무, 은행나무. 사진=박옥화

뜰 한쪽에서는 계절의 교차가 한창이다. 초여름을 분홍빛으로 물들였던 자귀나무가 꽃을 떨어뜨리며 갈무리를 시작하자, 한여름의 주인공인 배롱나무가 화려한 개화를 위해 숨을 고르고 있다.

머지않아 붉은 배롱나무꽃이 만개하면 장춘정은 그 이름처럼 다시 한번 완연한 ‘봄의 정원’으로 피어날 것이다. 선인들의 발자취와 자연의 순리가 살아 숨 쉬는 장춘정은, 오늘도 변함없는 영산강변의 푸른 물결을 묵묵히 내려다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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