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 늦은 꽃샘추위로 찾아온 눈이 바람의 손을 잡고 세상에 은빛 마법을 펼칩니다. 피부에 와 닿는 차가운 바람결에 몸은 움츠러들지만, 그 순백의 설원 앞에서 마음은 어린아이처럼 설레어 옵니다.

자연만이 그려낼 수 있는 이 하얀 캔버스 위에서 그저 감탄사만 연발합니다. 문득, 우리네 삶도 이 눈처럼 각자의 모양으로 세상에 내려앉아 함께 아름다움을 수놓고 있다는 것을 가슴으로 느낍니다.

눈송이가 되어 초록 나무 위에 살포시 내려앉아 그 잎새의 숨결을 느껴봅니다. 또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 세상을 내려다보는 눈이 되어, 모든 것을 품에 안는 듯한 따스함도 느껴봅니다. 그리고 오랫동안 그리워하던 소중한 얼굴들 위에도 부드럽게 내려앉아, 말로 표현하지 못했던 그리움을 전해봅니다.

누구에게나 같은 마음으로 다가가는 눈송이처럼, 먼저 손을 내미는 열린 마음이야말로 자연이 우리에게 속삭이는 가장 깊은 비밀이라는 것을 다시 알아가게 됩니다. 눈은 산봉우리와 낮은 골짜기, 화려한 도시와 적막한 시골 모두에 같은 포근함으로 내려앉아 세상을 하나로 감싸 안습니다. 자연은 그렇게 무언의 사랑을 가르칩니다.

자연의 숨결을 느낄수록 사람의 마음이 보이기 시작하고, 그 속에서 삶의 진정한 울림을 발견합니다. 자연과 사람이 하나이고, 사람과 사람이 하나라는 가슴 떨리는 진실을 눈은 소리 없이 들려줍니다.

우리는 뜻밖의 눈을 거부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품에 안습니다. 그것이 자연을 사랑하는 방식입니다. 우리 사회도 틀림이 아닌 다름의 아름다움을 가슴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인다면, 울창한 숲에서 무수한 생명들이 서로의 노래에 귀 기울이며 살아가듯, 우리도 더욱 따뜻한 세상을 함께 빚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눈이 내린 후의 세상은 모든 것이 순백의 침묵으로 덮여 하나가 됩니다. 그 고요한 풍경 속에서 우리의 마음도 고요히 가라앉으며 다시금 배웁니다. 자연과 하나 되는 법을, 서로 다름을 품에 안는 법을, 그리고 모든 것과 조용히 공명하는 법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