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주광역시에서 약 20km를 달려 나주시 다도면에 들어서면, 고려와 조선의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고스란히 품고 있는 ‘도래마을’이 반갑게 길손을 맞이한다. 이곳은 단순히 오래된 한옥이 모여 있는 곳을 넘어, 자연의 순리와 공동체의 흐름에 몸을 맡기며 살아온 우리 선조들의 지혜가 담긴 보물 같은 공간이다.
마을의 역사는 고려시대 남평문씨가 터를 닦으며 시작됐다. 이후 조선 초기 강화최씨가 들어왔고, 성천부사 홍수가 화를 입자 그의 부친 홍이와 인연이 있던 나주로 피신해 정착하며 풍산홍씨 집성촌으로 변모했다. 사냥을 왔던 홍안의가 최씨 처녀를 만나 장가를 들며 이곳에 정착했다는 설화는 마을의 역사에 낭만적인 색채를 더한다.
마을 어귀에서 가장 먼저 마주하는 ‘영호정’은 도래마을의 성격을 명확히 보여준다. 얼핏 풍류를 즐기는 정자처럼 보이지만, 본래는 ‘도천학당’이라 불리며 인재를 길러내던 배움의 터전이었다. 이조참판과 대사헌을 지낸 청백리 휴암 백인걸이 세운 네 학당 중 하나로 추정되는 이곳은, 일제강점기 사립학교로 사용되기도 하며 마을의 자부심이 되었다. 6·25 전쟁의 포화 속에서도 정자만은 살아남아 오늘날까지 마을의 선비 정신을 증언하고 있다.
도래마을의 진정한 가치는 자연에 순응하는 ‘순리’에 있다. 마을 뒷산 감태봉(140m)에서 내려오는 맑은 물이 세 갈래로 나뉘어 마을을 지나는데, 이 수맥이 ‘내천(川)’자 형국을 이룬다 하여 ‘도내’라 불리다 지금의 ‘도래’가 되었다. 풍수지리를 모르는 이가 보아도 산 좋고 물 좋은 명당임을 단번에 느낄 수 있다.
흥미로운 점은 가옥의 방향이다. 한국의 전통 가옥은 일조량을 위해 남향을 선호하기 마련이지만, 도래마을에는 남향집이 그리 많지 않다. 이는 집주인의 개인적인 욕심보다 마을 전체의 지형과 물줄기의 흐름에 순응해 집을 지었기 때문이다.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마을이라는 공동체의 틀 안에서 조화를 찾으려 했던 선조들의 겸손함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마을 곳곳을 지키는 방풍림 또한 일품이다. 10~30m 높이의 소나무와 대나무가 띠를 두르듯 섞여 심겨 있는데, 이는 겨울철 찬바람을 막고 밀폐도를 높여 마을을 아늑하게 감싸 안는다. 주산인 식산(292m)이 조선의 군사가 사흘간 먹을 식량을 품고 있다는 넉넉한 전설만큼이나 마을의 풍경은 풍요롭고 평온하다.
한때 100여 호에 달했던 큰 규모는 지금도 90여 호를 유지하며, 오히려 전통 마을의 아름다움을 찾아 터를 잡는 이들이 늘고 있다고 하니 다행스러운 일이다. 마을의 역사서인 ‘도천동지’를 만들 만큼 깊은 자부심을 간직한 도래마을은 이제 나주의 대표적인 한옥 관광지로 거듭나고 있다.
따스한 봄볕이 내리쬐는 요즘, 가족이나 친구의 손을 잡고 도래마을 굽이굽이 담장 길을 산책해 보는 것은 어떨까. 100년 전 선비들의 글 읽는 소리가 들려오는 듯한 영호정을 지나, 자연의 순리에 따라 지어진 한옥들 사이를 걷다 보면 일상의 피로는 어느덧 사라지고 마음속 깊은 곳에 평온이 깃들 것이다. 도래마을은 맑은 공기와 건강, 그리고 역사 공부라는 ‘일석삼조’의 행복을 우리에게 아낌없이 내어주고 있다.



![[기자수첩] 100년 명품 숲공원 전남산림연구원](https://naju-senior.com/wp-content/uploads/2026/04/KakaoTalk_20260422_104523133-1-218x150.jpg)
![[기자수첩] 천년의 소리 피어나는 나주신청문화관](https://naju-senior.com/wp-content/uploads/2026/04/한옥1-218x150.jpg)
![[기자수첩] 쪽빛 물든 천 년 도시 나주, 천연염색 살아있는 역사](https://naju-senior.com/wp-content/uploads/2026/04/천연염색-이미지-218x150.jpg)
![[기자수첩] 500년 충절 붉은 꽃망울, 나주 금사정 동백](https://naju-senior.com/wp-content/uploads/2026/04/20260423_141024-218x150.jpg)

![[기자수첩] 댕기 머리 희롱에 맞선 분노, 전국적 항쟁으로… 구 나주역을 찾아서](https://naju-senior.com/wp-content/uploads/2026/04/사본-역사내-검표원-관광객-218x150.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