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하늘 아래 장엄한 위용을 자랑하는 나주 반남면 신촌리 9호분 전경. 100여 년 전 일제강점기의 암흑기 속에서 극적으로 발굴되어, 백제와 대등하게 맞서며 찬란한 독자적 문화를 유지했던 고대 마한 최고 지배자의 실체를 세상에 알린 역사의 고향이다. 사진=정웅남
국립나주박물관 상설전시실 내에 마련된 고분과 장송 의례, 그리고 나주 신촌리 9호분 관련 유물 설명판. 수천 년 전 마한 지배층의 독창적인 사후 세계관과 무덤 축조 과정을 학술적이고 상세하게 기록하여 관람객들의 깊은 이해를 돕고 있다. 사진=정웅남
국립나주박물관 상설전시실에 줄지어 전시된 마한의 대형 독널(옹관)들. 영산강 유역 고대 지배층의 무덤 양식을 대변하는 이 거대한 독널들은 백제나 신라와 확연히 구분되는 마한 문화의 독창성과 수천 년 전 반남면 일대를 호령했던 세력의 막강한 규모를 직관적으로 증명한다. 사진=정웅남

우리 고향 나주 반남면은 백제·신라·가야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독창적인 문화를 형성했던 마한의 위대한 왕도가 있던 중심지입니다. 나주시니어신문이 국립나주박물관과 함께 찬란한 고대 문화를 꽃피웠던 미스터리한 정치 세력인 마한의 위대한 역사를 파헤치는 35부작 연재를 선보입니다. 매주 발행되는 신문을 스크랩하여 보관하면 우리 집 안방에서 즐기는 최고의 ‘마한 역사 대백과사전’이 될 것입니다. 반남면의 후예로서 당당한 자부심을 품고 선조들의 강인한 뚝심과 기상이 담긴 위대한 보물 이야기 속으로 함께 떠나보시길 바랍니다.

[싣는순서(대주제)]
제1부 미스터리의 서막, 왜 나주 반남인가?
제2부 세계 고고학계가 경탄한 대형 독널(옹관) 문화의 신비
제3부 국보 금동관과 지배층의 찬란한 황금 보물들
제4부 마한 민초들의 따뜻한 일상과 풍요로운 경제력
제5부 미래로 이어지는 박물관의 숨은 매력과 비전

​​역사는 때로 한 줌의 흙과 그 속에 묻혀있던 유물 한 점을 통해 수천 년 동안 베일에 싸여있던 거대한 진실을 세상에 드러내곤 한다. 우리 고향 나주 반남면의 중심에 자리 잡은 ‘반남 고분군’이 바로 그런 역사의 반전이 시작된 무대다. 그중에서도 신촌리 9호분은 한반도 남단 고대사의 지도를 완전히 새로 그리게 만든 전설적인 유적이자 마한 왕도의 화려한 실체다.

​본지가 국립나주박물관과 공동 기획한 35부작 대연재, 그 세 번째 순서로 100여 년 전 일제강점기의 암흑기 속에서 극적으로 세상의 빛을 보게 된 ‘나주 신촌리 9호분’의 발굴 비화와 그곳에서 쏟아져 나온 찬란한 황금빛 보물들의 비밀을 추적한다.

​아픔의 역사 속에서 베일을 벗은 ‘마한 최고 지배자의 무덤’

​신촌리 9호분의 발굴 역사는 지금으로부터 100여 년 전인 1917~1918년, 일제강점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일제는 한반도 고대사의 뿌리를 왜곡하고 자신들의 입맛에 맞추기 위해 영산강 유역의 거대한 고분군을 대대적으로 파헤치기 시작했다. 우리 선조들의 영혼이 잠든 안식처가 도굴에 가까운 약탈적 발굴로 몸살을 앓았던 아픈 역사의 한 페이지다.

​그러나 나라를 빼앗긴 설움 속에서도 반남면 대지가 품고 있던 역사적 기상까지 감출 수는 없었다. 신촌리 마을 뒷산에 웅장하게 솟아있던 9호분의 거대한 흙을 걷어내자, 세계 고고학계를 경탄케 한 독창적인 매장 문화가 모습을 드러냈다.

​지하를 광대하게 파고 들어간 거대한 무덤 안에는 마한의 독자적 상징인 ‘대형 독널(옹관)’ 11기가 별자리처럼 정교하게 배치되어 있었다. 이는 백제나 신라의 무덤 양식과는 완전히 궤를 달리하는 것으로, 이곳 영산강 유역에 고유의 문화적 정체성을 가진 독자적이고 강력한 지배 세력이 존재했음을 보여주는 위대한 서막이었다.

황금빛 위엄으로 깨어난 고대 마한의 자부심, 국보 금동관

​신촌리 9호분 발굴의 정점이자 한반도 고대사 연구의 물줄기를 바꾼 순간은 바로 ‘을(乙)호 독널’의 뚜껑이 열렸을 때였다. 성인의 키를 훌쩍 넘는 거대한 옹관 내부에서는 수천 년의 세월을 무색하게 할 만큼 찬란한 황금빛 보물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중에서도 중심에 있던 유물이 바로 현재 대한민국 국보로 지정된 ‘나주 신촌리 금동관(국보)’이다.

​나주 신촌리 금동관은 나뭇가지 모양의 장식이 돋보이는 백제나 신라의 왕관과 달리, 정교한 풀꽃 모양(초화문)과 함께 영롱한 대칭미를 자랑하는 독창적인 양식을 띠고 있었다. 왕관과 함께 출토된 ‘봉황무늬 고리자루칼(환두대도)’과 수많은 금고리, 은반지 등은 이 무덤의 주인이 단순히 한 지역의 부족장이 아니라, 영산강 유역 전체를 호령하고 주변 강대국들과 대등하게 외교를 펼쳤던 마한의 위대한 ‘왕(王)’이었음을 단번에 증명했다.

일제는 이 화려한 유물을 보고 당황했으나, 역사의 진실은 숨길 수 없었다. 교과서에 명확히 기록되지 못했던 고대 마한의 막강한 정치 체제와 왕권의 실체가 반남면 신촌리 땅속에서 완벽하게 살아난 순간이었다.

​수천 년의 안개를 걷어내고, 내일의 자부심으로 서다

​나주 신촌리 9호분에서 깨어난 찬란한 유물들은 현재 국립나주박물관 상설전시실의 가장 격조 높은 자리에 보존되어, 우리 고향을 찾는 전국의 관람객들에게 마한의 위엄을 웅장하게 전하고 있다.

​국립나주박물관 학예실은 “신촌리 9호분은 고대 영산강 유역 마한 세력이 가졌던 예술적 성취와 정치적 독립성의 결정체”라며 가치를 높이 평가했다.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반남의 고분들은 침묵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 안에는 이토록 가슴 뛰는 위대한 역사와 선조들의 당당한 기상이 살아 숨 쉬고 있다. 이 위대한 자부심을 안고 떠나는 여정 속에서, 다음 제4부에서는 키보다 큰 영혼의 그릇이자 마한인들의 사후 세계관이 담긴 세계적 미스터리, ‘대형 독널(옹관)의 모든 것’을 집중 취재하여 보도할 예정이다.

​✍️ [기자 수첩] 신촌리 9호분의 황금빛은 반남의 영원한 긍지입니다
​일제강점기라는 어두운 역사의 터널 속에서도 당당하게 빛을 발하며 깨어난 신촌리 9호분의 국보 금동관은, 우리 반남면이 고대 동아시아의 주역이었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입니다. 주변의 거센 압박 속에서도 끝내 굴하지 않고 자신들만의 화려한 황금 문화를 꽃피웠던 선조들의 강인한 뚝심은 우리 반남 주민들의 삶 속에 고스란히 녹아 있습니다.
​고분길을 산책하시거나 박물관의 금동관을 마주하실 때, 우리 고향에 대한 뜨거운 사랑과 긍지를 가슴 가득 채워보시길 바랍니다. 무더위 속에서도 언제나 고향 땅을 든든하게 지키고 계시는 반남면 주민 여러분 모두의 건강과 가정의 평안을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댓글을 남겨주세요

댓글을 입력해 주세요!
여기에 이름을 입력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