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나주역 역사공원에 세워진 '동학농민군 희생자를 기리는 사죄의 비'. 사진=김동애
동학농민군 희생자를 기리는 사죄비의 일본어 비문. 과거의 상처를 넘어 미래의 상생과 세계 평화의 초석이 되기를 바라는 기원이 담겨 있다. 사진=김동애

또다시 8·15 광복절이 다가온다. 해방의 기쁨을 되새기고 한일 관계의 과거와 미래를 깊이 생각해보게 되는 이 계절, 얼마 전 우리 동네 나주 땅에 조용히 세워진 비석 하나가 유독 마음을 사로잡는다.

나주에 터를 잡고 많은 세월을 살아왔으면서도 부끄럽게도 최근에야 알게 된 사실이 하나 있다. 나주 땅 한쪽에 과거의 참혹했던 잔학상을 머리 숙여 사죄하는 일본인들의 작은 돌비석이 세워져 있다는 사실이다.

광복절을 앞두고 만난 정연수 나주 문화해설사의 이야기를 듣는 순간, 나주를 잘 안다고 생각했던 스스로에게 알 수 없는 부끄러움과 놀라움이 동시에 밀려왔다. 이야기가 끝나기가 무섭게 “당장 가보고 싶다”며 해설사님과 함께 현장으로 향했다.

그렇게 찾아간 곳은 죽림리 구 나주역 공원 근처에 세워진 ‘동학농민군 희생자를 기리는 사죄의 비’였다. 2023년 10월 30일에 건립된 이 비석에는 가슴 아픈 역사의 참상과 숭고한 양심이 함께 새겨져 있었다.

1894년 동학농민혁명 당시 나주는 전국에서 가장 많은 농민군이 희생된 비극의 땅이었다. 1894년 12월 10일(양력 1895년 1월 5일), 나주성에 입성한 일본군 후비보병 제19대대는 잔혹한 ‘전원살육 작전’을 감행했고, 각지에서 끌려온 수백 명의 농민군 지도자들은 나주 초토영(현 나주초등학교)에서 차디찬 이슬로 사라졌다.

이 가슴 아픈 역사를 직시하고 수면 위로 올린 이들은 역설적이게도 일본의 양심적 지식인들이었다. 당시 나주 참상의 증거가 된 것은 일본군 쿠스노키 비요키치 상등병이 남긴 『종군일지』였는데, 이노우에 카츠오 교수를 비롯한 일본 학자들은 이 자국의 참혹한 학살 기록을 직접 발굴해 내며 나주 동학의 잔혹했던 진실을 고증했다.

이들은 나라여자대학의 나카츠카 아키라 명예교수와 함께 2019년부터 3년간 한일 공동 심포지엄을 열어 역사를 복원해 냈다. 나아가 자국이 저지른 참상을 사죄하고자 일본 시민들의 성금을 자발적으로 모았고, 나주시와 한국 시민들의 협력 속에 비로소 이 사죄비를 세웠다.

“1895년 1월 일본군 후비보병 제19대대가 나주성에 입성해 처참한 토벌 작전을 전개했습니다. 일본군에 의해 잔혹하게 살해된 동학농민군 희생자와 한국의 모든 분들에게 일본인으로서 마음으로부터 추도하고 사죄드립니다.” (제막식 당시 이노우에 카츠오 명예교수의 사죄사 중)

더욱 가슴을 먹먹하게 하는 이야기는 그 뒤에 숨어 있었다. 평생을 한일 역사의 진실을 밝히는 데 바쳤던 나카츠카 교수는 95세라는 고령의 나이에도 나주 사죄비 건립에 모든 진심을 쏟으셨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비석이 제 모습을 드러내기 불과 하루 전인 2023년 10월 29일, 간절했던 마지막 소원을 가슴에 품은 채 세상을 떠나셨다.

스승은 갔지만 그 양심의 뜻은 끊이지 않았다. 해마다 사죄비가 세워진 10월 30일이 되면, 고인의 뜻을 잇는 제자들과 유족들이 이곳 나주 죽림리 구 나주역 공원을 찾아와 헌화하고 참배를 올린다고 한다.

사죄는 말이 아니라 지속되는 기억과 행동으로 완성된다. 자국의 치부를 직시하고 평생을 바쳐 사죄의 돌을 세운 95세 학자의 집념, 그리고 스승의 뜻을 따라 매년 나주를 찾는 유족과 제자들의 발걸음은 냉랭한 한일 관계 속에서 참된 평화와 연대가 무엇인지를 묵묵히 보여준다.

“이 조그만 사죄비가 지식인과 시민 연대를 뛰어넘어 세계 평화의 초석이 되길 간절히 기원합니다.“

비석에 새겨진 이 문장이 광복절을 앞둔 오늘따라 더욱 무겁고 아련하게 다가온다. 오늘을 살아가는 나주인으로서, 그리고 역사를 기록하는 기자로서 이 작은 돌비석이 품은 숭고한 양심의 무게를 잊지 않고 가슴 깊이 새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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