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산강 물길이 막힌 후, 최병권 어르신은 2톤급 어선 '청용1호'를 트레일러에 실어 금호방조제 인근 바다로 나가 조업을 이어가고 있다. 사진=김동애

영산강은 지역민의 삶을 지탱해 준 풍요로운 젖줄이자, 때로는 가혹한 자연재해로 큰 아픔을 안겨준 성난 존재이기도 했다. 하굿둑과 여러 보가 들어서며 수해의 양상은 달라졌지만, 강에 의지해 살아온 이들의 삶은 여전히 강물의 변화와 궤를 같이하고 있다.

(상)편에 이어 동강면 곡천리 최병권 어르신(76·현 ‘산너머바다’ 횟집 운영)의 증언을 통해, 영산강 수해의 참상과 치수(治水)의 한계, 그리고 여전히 강과 바다를 누비는 현역 어부로서의 삶과 애환을 조명한다.

다음은 최병권 어른신과의 일문일답이다.

Q. 옛날 영산강에 큰 장마나 수해가 났을 때, 당시 마을의 모습은 어떠했습니까?

A. 옛날에는 장마가 한 번 크게 지면 강물이 둑을 넘어 마을 전체를 덮쳤습니다. 집 지붕까지 물이 차올라 주민들이 지붕 위로 피신하고, 뗏목이나 배를 타고 구출되던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지요.
제가 타던 2.13톤짜리 목선 배도 물에 밀려와 지붕 위를 둥둥 떠다녔을 정도였습니다. 가재도구는 물론이고 일 년 내내 피땀 흘려 가꾼 농작물이 순식간에 흙탕물 속으로 사라지는 모습을 바라보며, 마을 사람들은 기가 막혀 말문이 막히거나 차마 눈을 뜨지 못하고 깊은 탄식만 내뱉곤 했습니다.

1981년 영산강 하굿둑이 들어선 이후인 1989년 7월에도 내영산 일대가 물에 잠긴 모습. 구조물 설치만으로는 대형 침수를 완전히 막을 수 없었음을 보여준다. 사진=나주시
과거 큰 비만 오면 범람하던 영산중학교 앞 영산강변의 현재 모습. 높고 견고하게 쌓아 올린 제방이 지난날 수해의 아픔을 품은 채 유유히 흐르는 강물을 지켜보고 있다. 사진=김동애

Q. 한해 동안 정성껏 가꾼 벼와 농작물이 장마 한 번에 모두 물에 잠겼을 때, 당시 주민들의 심정은 어떠셨나요?

A. 말도 못 하지요. 하늘만 바라보며 일 년 내내 땀 흘려 가꾼 농사가 하룻밤 사이에 쓸려갈 때의 심정은 자식을 잃은 것처럼 가슴이 무너져 내립니다.
특히나 저는 횟집 식당을 운영하며 손님상에 올리려고 정성스레 지은 고추며 갖가지 야채 농사도 함께 지었는데, 그 농사를 한순간에 망쳤을 때의 허탈함은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었습니다. 싱싱했던 고춧대가 물에 잠겨 썩어가고 잎채소들이 흙더미에 파묻힌 모습을 보면 눈앞이 아득해졌지요. 싹 쓸려 간 밭을 바라보며 한숨만 쉬던 그 시절 주민들의 눈물은 영산강이 가진 가장 아픈 기억일 것입니다.

Q. 1980년대 영산강 하굿둑이 들어서고 이후 여러 보(洑)가 설치되면서 수해가 줄어들었나요?

A. 하굿둑과 보가 생기면서 예전처럼 무작정 강물이 범람해 지붕까지 차오르는 일은 줄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수해 걱정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물길이 갇히면서 수문 조절에 실패하거나 갑작스러운 폭우가 내리면 물이 빠져나가지 못해 또 다른 형태의 수해가 발생합니다. 게다가 강물이 흐르지 않고 고여 있다 보니 바닥에 펄이 쌓이고 물이 썩어가는 문제가 더 심각해졌지요. 강을 막는 것만이 치수의 답은 아니라는 것을 지난 세월이 증명하고 있습니다.

Q. 영산강 물길이 막힌 후, 지금은 배를 트레일러에 실어 멀리 금호방조제 인근 바다까지 끌고 나가 고기를 잡으신다고 들었습니다. 칠순이 넘으신 연세에 육체적으로 힘들지는 않으신가요?

A. 허허, 물론 이 나이에 배를 차로 끌고 바다까지 나가는 게 힘이 안 든다면 거짓말이지요. 영산강이 막히고 오염되면서 강에서는 더 이상 고기를 잡을 수 없게 되니, 어쩔 수 없이 금호방조제 인근 바다까지 2톤짜리 배를 트레일러에 실어 나가 고기를 잡고 있습니다.
몸은 고되고 번거롭지만, 평생을 배를 타고 살아온 어부라 그런지 바다에 나가 그물을 당길 때가 가장 마음이 편하고 살아 있음을 느낍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내 집 앞 영산강을 지척에 두고도 멀리 바다까지 나아가야만 하는 현실에 마음 한구석이 쓸쓸하고 씁쓸할 때가 많습니다.

성난 물길과 수해의 아픔을 품어 안은 채 푸른 하늘 아래 유유히 흐르는 영산강 전경. 갇힌 굴레를 벗고 다시금 맑은 숨을 쉬며 사람과 함께 흐르기를 기대해 본다. 사진=김동애

Q. 성난 강물과 수해의 세월을 견디며 평생 영산강을 지켜오셨습니다. 치수(治水)의 역사를 몸소 겪으신 어르신께서 앞으로 영산강의 미래에 대해 꼭 하고 싶으신 말씀이 있으신가요?

A. 강을 인위적으로 막고 가두는 것만이 치수가 아니라는 것을 지난 세월이 똑똑히 보여주었습니다. 강은 사람을 해치려는 존재가 아니라, 막히지 않고 시원하게 흘러야 비로소 사람도 살고 강도 사는 법입니다.
제 마지막 바람이 있다면, 막힌 수문이 열리고 갇힌 물길이 사방으로 뻥 뚫려 영산강이 다시 예전처럼 호쾌하게 흘러가는 모습을 보는 것입니다. 사람이 강을 길들이려 하기보다, 강 본래의 흐름을 살려 함께 살아가는 지혜를 모아 주길 바랄 뿐입니다.

성난 물길과 수해의 아픔을 품어 안은 채 푸른 하늘 아래 유유히 흐르는 영산강 전경. 갇힌 굴레를 벗고 다시금 맑은 숨을 쉬며 사람과 함께 흐르기를 기대해 본다. 사진=김동애

2회에 걸친 취재를 마치며,
영산강은 단순한 자연물에 그치지 않고 우리 지역민의 삶과 눈물이 켜켜이 쌓인 역사의 현장임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범람하는 성난 물길 속에서 터전을 잃고 흙탕물을 삼키면서도 끝내 강 곁을 지켜낸 농군과 상인들의 삶은 그 자체로 영산강의 산역사였다.

내 집 앞 강을 두고도 트레일러에 배를 실어 멀리 바다로 나아가야 하는 현실 속에서도, 어르신은 여전히 강을 품고 살아가신다. 성난 강물을 견뎌내며 삶을 일구어 온 지역민들의 강인한 의지처럼, 영산강 역시 답답하게 갇힌 물길을 시원하게 트고 다시금 도도히 흘러 우리 삶을 풍요롭게 살찌우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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