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산강은 오랜 세월 나주 사람들의 삶을 품어온 젖줄이었다. 강은 아이들의 놀이터이자 어민들의 생계 터전이었고, 수많은 생명들이 어우러져 살아가는 생태의 보고였다. 그러나 하굿둑 건설과 급격한 환경 변화로 영산강의 모습은 크게 달라졌다. 동강면 곡천리에서 태어나 4대째 영산강과 함께 살아온 최병권 어르신(76·현 ‘산너머바다’ 횟집 운영)은 강의 변화상을 몸소 겪어온 산증인이다.
어르신의 기억 속에는 웅어가 뛰놀고 풍천장어가 넘쳐나던 시절의 영산강이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 있다. 본지는 최 어르신의 증언을 통해 사라져 가는 영산강의 옛 모습을 2회에 걸쳐 조명한다. 첫 번째 순서로 포구의 추억과 생태계, 풍천장어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다음은 최병권 어르신과의 일문일답이다.
Q. 어린 시절 동강면 곡천리에서 자라실 때 영산강은 어떤 곳이었습니까?
A. 당시에는 속옷 차림으로 강에서 수영하고 줄배를 타며 놀았습니다. 사리 때가 되면 바닷물이 여기까지 올라오는 조수 왕래 지역이라 뻘밭이 넓게 펼쳐졌지요. 아이들과 함께 뻘 속을 뛰어다니며 뻘쌈을 하곤 했습니다.
밀물이 들어오면 잠시 흐린 물이 지나간 뒤 다시 맑은 물이 흘렀습니다. 배 위에서 밥을 해 먹을 때는 양철 화덕을 만들어 강물을 그대로 떠다가 쌀을 씻고 밥을 지었습니다. 강물에 은은한 간기가 배어 있어 밥맛이 참 좋았습니다.
Q. 당시 영산강에는 어떤 물고기와 수생생물이 살았나요?
A.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감조하천이라 웅어, 숭어, 잉어, 농어가 아주 많았습니다. 재래식 통발인 ‘주벅’과 중천매기를 이용해 농어와 장어, 빠가사리를 잡았지요.
뻘에서는 짱뚱어와 맛조개, 대갱이(개소갱), 보리밥(미더덕과 비슷한 주름멍게)등이 많았지요. 특히 재첩은 걸깽이로 긁으면 하루에 100포대씩 잡힐 정도로 많았습니다.
Q. 웅어와 장어 새끼인 시라시를 잡던 기억도 있으실 것 같습니다.
A. 웅어는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영산강으로 올라와 산란하기 때문에 맛이 좋았습니다. 쑥갓을 넣어 회무침으로 먹으면 식감이 정말 좋았지요. 제가 열세 살 때부터 장어새끼인 시라시를 잡았습니다. 그때 삼양라면 한 봉지가 15원이었는데 시라시 한 마리 값도 15원이었습니다. 라면 한 봉지와 맞바꿀 정도로 귀한 어종이었지요. 금학산업, 한국양만, 성일통상 같은 회사들이 시라시를 수매해 일본으로 수출했습니다. 당시에는 지역 경제에도 큰 도움이 됐습니다.

Q. 구진포와 풍천장어의 유래도 들려주십시오.
A. 구진포는 영산강 열두 굽이 가운데 아홉 번째 큰 물굽이라 해서 붙은 이름입니다. 하굿둑이 생기기 전에는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곳이라 장어가 자라기에 최적의 환경이었습니다.
옛날에는 ‘개매기’라는 전통 어로 방식으로 장어를 잡았습니다. 물이 들 때 대나무와 그물을 설치해 두었다가 물이 빠지면 통발에 들어온 장어를 거두어들였지요. 저도 어린 무렵부터 잡은 장어를 구진포 횟집에 공급했습니다.
지금의 구진포 장어거리는 바로 그 시절 자연산 풍천장어의 명성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하지만 하굿둑이 들어선 뒤 자연산 장어는 크게 줄어들어 이제는 귀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Q. 맑던 강물이 오염되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였습니까?
A. 나주 호남비료 공장에서 탱크를 세척한 뒤 나온 기름 찌꺼기가 강으로 흘러들면서부터였습니다. 강 위에 떠다니는 기름 덩어리를 건져 보릿대에 묻혀 불을 때기도 했습니다. 당시에는 환경오염에 대한 인식이 지금처럼 높지 않았던 시절이었습니다. 생활하수와 각종 오·폐수가 별다른 처리 없이 강으로 흘러들어가면서 영산강은 자연스럽게 생활하수의 배출구 역할까지 떠안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수질 악화는 결국 환경 문제의 심각성을 일깨우는 계기가 되었고, 이후 하수처리장 등 환경기초시설이 하나둘 설치되는 배경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미 강은 예전의 맑고 풍요로운 모습을 조금씩 잃어가고 있었습니다.
여기에 1970~80년대 영산강 하굿둑이 건설되면서 물길마저 가로막혔습니다. 강물의 흐름이 둔해지고 물고기들의 이동이 제한되면서 생태환경에도 큰 변화가 찾아왔습니다.
Q. 평생 영산강을 품고 살아오셨습니다. 옛 영산강을 기억하는 선배 세대로서, 앞으로 이 강을 함께 살아가야 할 후손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가요?
A. 제 바람이라면 예전처럼 물고기들이 자유롭게 헤엄치고, 사람들이 강물을 믿고 의지하며 살아가던 푸른 영산강을 다시 만나는 것입니다. 강가에서 뛰놀던 추억이 후손들에게도 이어질 수 있도록 영산강이 본래의 건강한 모습을 되찾았으면 좋겠습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영산강의 제1지류인 남평 지석강(지석천)을 둘러보았다. 한때 투명한 물빛을 자랑하던 강물은 온데간데없고, 강 표면 전체가 초록색 개구리밥과 수초, 녹조로 빽빽하게 뒤덮여 마치 푸른 들판처럼 변해버려 있었다. 영산강 하굿둑과 거대한 구조물들이 물길을 가로막으면서 본류뿐만 아니라 지류까지 물 흐름이 정체되고 있음을 눈으로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최병권 어르신이 그토록 그리워하던 ‘맑고 건강했던 옛 영산강’의 모습은 언제쯤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다음 호 예고] 2편에서 지붕까지 차오르던 성난 물길에 맞선 수해의 기억과 치수(治水)의 한계, 그리고 영산강 곁에서 평생 삶을 일구어온 최병권 어르신의 궤적을 이어갑니다.
※ 이 기사는 사회적협동조합 시니어신문네트워크가 수행하는 보건복지부 ‘2026노인자원봉사활성화지원사업’의 일환으로 작성됐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