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적, 외할머니 댁 문을 열고 들어서던 순간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편안함이었습니다. 세상 어디에도 없는 그 집만의 공기가 있었습니다. 장작 냄새인지, 아니면 그냥 외할머니 냄새인지  문을 열기도 전에 마음이 먼저 그 안으로 들어가 있었지요.

외할머니는 평생 농사일로 허리도 아프고 다리도 불편하셨습니다. 그런데도 늘 무언가를 중얼거리듯 말씀하셨지요.

“오늘도 해가 떠 주네. 고추들이 영글게 되니 얼마나 고마운 일이야.“

“우리 손자들이 건강하게 자라주니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

“오늘은 우리 귀한 손주들에게 뭘 맛있게 해줄까?“

그 말씀이 끝나기가 무섭게 외할머니는 아궁이 앞에 쭈그리고 앉으셨습니다. 장작에 불을 붙이고, 가마솥 뚜껑을 열어 무언가를 넣으시던 그 뒷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솥에서 무럭무럭 김이 오르면 부엌 안이 온통 구수한 냄새로 가득 찼지요.

허리도 아프실 텐데 돌아보면 늘 하회탈처럼 온화한 웃음을 머금고 계셨지요. 손주들을 먹이는 일이 그렇게 즐거우셨던 모양입니다.

그렇게 만들어 주신 호박떡의 맛이 아직도 잊히지 않습니다. 달지도 않고 투박한데, 왜 그렇게 맛이 있었는지. 아마 그 떡엔 외할머니의 감사하는 마음이 함께 들어가 있었던 게 아닐까 싶습니다.

세월이 흘러 이제 저도 할머니가 되었습니다. 장을 보고 돌아오는 길이 예전보다 멀게 느껴지고, 가뿐히 해내던 일들이 조금씩 버겁게 다가오는 나이가 됐지요. 마음처럼 풀리지 않는 일들이 생길 때면, 나도 모르게 부정적인 말이 먼저 나오기도 합니다. 그럴 때마다 외할머니 말씀이 떠오릅니다.

해가 떠 주네. 고마운 일이야.

그 말씀이 마음속에 조용히 내려앉을 때면, 생각합니다. 가끔 따뜻한 안부 문자를 보내주는 손녀가 달려와 안길 때, 힘들어도 미소를 잃지 않는 할머니이고 싶다고. 손녀가 해 달라는 음식을 불평 없이 만들어 주는 할머니이고 싶다고, 외할머니께서 아궁이 앞에 쭈그리고 앉으시면서도 웃으셨던 것처럼, 저도 그렇게 따뜻한 뒷모습으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불평보다 감사할 거리를 먼저 찾으셨던 그분이, 그렇게 많은 가족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하셨던 이유를 이제야 조금씩 알 것 같습니다. 손녀의 짧은 문자 한 줄이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우듯, 외할머니의 작은 감사도 온 가족의 하루를 따뜻하게 하셨던 것이겠지요.

거울 앞에서, 혹은 길을 걷다가, 슬며시 입꼬리를 올려봅니다. 외할머니처럼.

결국 감사하는 마음이 나를 웃게 하고, 내 웃음이 곁의 사람을 따뜻하게 한다는 것을 — 외할머니는 말이 아닌 삶으로 가르쳐 주셨습니다.

아궁이 연기 냄새와 호박떡이 그리운 날이면, 그 다짐이 더 선명해집니다. 오늘도 도화지에 꽃말이 ‘영원한 행복’인 루드베키아 한 송이로 오늘의 마음을 그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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