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연기념물 제515호로 지정된 ‘나주 금사정 동백나무. 사진=박옥화
’동백나무와 금사정‘ 영산강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자리하고 있다. 사진=박옥화
500년 세월의 풍파를 견뎌낸 거대한 생명력이 느껴지는 동백의 모습. 사진=박옥화
동백나무의 장생을 기원하는 ‘장생기원제’를 지내고 있다. 사진=박옥화

나주시 왕곡면 송죽리, 영산강 물줄기가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는 500년 세월의 풍파를 견뎌낸 거대한 생명력이 살아 숨 쉬고 있다. 켜켜이 쌓인 시간 속에서 변치 않는 푸르름을 간직한 천연기념물 제515호 ‘나주 금사정 동백나무’가 올봄에도 붉은 꽃망울을 터뜨리며 남도의 봄을 알리고 있다.

금사정 동백나무는 높이 6m, 줄기 둘레 2.4m로 동백나무 중 매우 크고 수형이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동백나무 숲이 아닌 단일 개체(한 그루)로서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국내 최초의 사례로 꼽힌다. 동백꽃은 시들거나 상하지 않고 붉은 꽃송이가 통째로 떨어지기 때문에 예로부터 선비의 절개 또는 변함없는 지조를 상징해 왔다.

이 나무에 담긴 숭고한 정신은 조선 중종 14년(151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급진 사림파 조광조가 화를 당하자, 그를 구명하려던 나주 출신 유생 임붕 등 11명은 낙향하여 ‘금강계(錦江契)’를 조직하고 금사정(錦沙亭)을 세웠다. 선비들은 이곳 마당에 동백나무를 심으며 난세에도 꺾이지 않을 충절을 맹세했고, 그 기개는 옹이마다 새겨져 오늘날까지 푸른 잎사귀 사이로 생생히 전해진다.

동백나무와 함께 자리를 지키고 있는 ‘금사정’은 그 자체로 나주 사림 정신의 상징이다. 나주시 향토문화유산 제20호로 지정된 이 정자는 1665년 중건을 거쳐 현재의 단아한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단순한 건축물을 넘어 조선 시대 나주 선비들의 결집지이자 역사적 가치가 높은 공간이다. 정자 내부의 시판(詩板)들은 500년 전 선비들의 고결한 숨결을 고스란히 전한다.

금사정 동백나무는 기상 악화와 노령화로 수세가 약해지는 위기를 겪기도 했다. 그러나 2025년부터 시행된 국가 차원의 체계적인 관리와 지역 주민들의 정성이 더해지면서, 올해 동백은 보란 듯이 건강한 꽃을 피워냈다. 수세의 한계를 뛰어넘어 500년 세월이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숭고한 생의 의지를 우리에게 전해 온 것이다.

이러한 주민들의 애정은 매년 봄에 열리는 ‘금사정 동백축제’로 이어진다. 마을의 안녕과 동백의 장생을 기원하는 ‘장생기원제’와 다채로운 체험 프로그램은 상춘객들에게 큰 호응을 얻고 있다.

나주시 왕곡면 송죽리 130에 위치한 금사정 동백나무는 박포교차로에서 죽산보 방향으로 가다 보면 만날 수 있는 송죽1리 동백마을의 상징이다. 특히 남도의병역사박물관에서 국립나주박물관, 반남고분군으로 이어지는 나주 서남부 역사 기행의 길목에 자리해 있어, 가족 단위 탐방객들의 나들이 코스로도 손색이 없다.

오백년 동백의 정취를 만끽한 후 즐기는 나주의 미식 또한 놓칠 수 없는 즐거움이다. 인근에는 나주 한우의 찰진 식감을 살린 생고기 비빔밥과 풍미 가득한 숯불구이 맛집 등이 여행객의 발길을 붙잡는다. 식사 후에는 고목의 풍경을 품은 인근 카페에서 차 한 잔의 여유를 즐기며 일상의 피로를 씻어내기에 충분하다.

현장에서 마주한 동백나무의 수피(樹皮)는 거칠었으나 단단했다. 금사정 앞에 앉아 나무를 보고 있노라면, 500년 전 선비들이 나누었을 고결한 담론이 바람결에 들리는 듯하다. 이번 주말, 역사의 향기와 동백의 붉은 기개가 어우러진 왕곡면 송죽리로 시간 여행을 떠나보는 것을 추천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