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산강 물길이 유유히 흐르는 나주시 영산동. 강바람을 따라 걷다 보면 조선 시대 선현을 기리고 지역의 역사와 학문 전통을 이어 온 유서 깊은 사우(祠宇) ‘영강사(榮江祠)’를 만난다. 나주시 영산동 39-8에 자리한 영강사는 나주시 향토문화유산 제18호로, 300여 년의 세월을 간직한 역사문화 공간이다. 이곳에는 나주에 뿌리내린 선비들의 정신과 후학을 향한 뜻이 오늘까지 고스란히 남아 있다.
경주 이씨 선현 여섯 분을 모신 집
영강사 안내문에 따르면, 영강사는 경주 이씨 명현 선조 6위를 향사하는 사우다. 1712년(숙종 38) 율정(가마태)에 창건됐으며, 건립 당시에는 기묘명현으로 추앙받는 모산(茅山) 이해(李瀣, 1468~1525)와 그의 조카 야은공 이영우(李永祐), 이해의 증손이자 효행으로 이름이 높던 이유경(李有慶, 1543~1609) 세 분을 배향했다.
학문과 절의, 그리고 효행. 세 선현의 면면에는 옛 선비들이 가장 귀하게 여긴 덕목이 고루 담겨 있다. 사당 앞에 서면 화려함보다 단정함을 택했던 그들의 기품이 먼저 전해진다.
유배객을 품으며 서원으로 높아진 위상
영강사는 시대의 흐름 속에서 배향 인물과 위상을 달리하며 역사를 이어 왔다. 1722년에는 강당을 지어 사우가 아닌 ‘서원’의 구색을 갖췄고, 1732년에는 재사당 이원(李黿, ?~1504)을 추배했다.
이원은 김종직의 제자로, 무오사화에 연루돼 나주로 유배 온 인물이다. 그의 배향을 계기로 영강서원의 위상은 한층 높아졌다. 이원의 유배지를 기리는 적거유허비가 지금도 노안면 학산리에 남아 있다는 사실은, 영강사가 나주 지역의 역사와 얼마나 깊이 이어져 있는지를 말해 준다. 먼 곳에서 온 유배객을 지역이 품고, 다시 그를 스승처럼 기려 온 셈이다.
훼철과 복설을 넘어 이어 온 제향
영강사는 이후 여러 차례 중건과 추배를 거치며 오늘에 이르렀다. 1796년(정조 20)에는 동·서재와 협문, 창고를 지었고, 1805년(순조 5)에는 신실(神室)을 중수했다. 1818년(순조 18)에는 송계 유공신(松溪 柳公信)을 다시 추배했으나, 1823년(순조 23) 그의 위패는 송산사로 옮겨졌다.
시련도 있었다. 1868년 서원 훼철령으로 서원이 헐리고 터만 남게 된 것이다. 그러나 맥은 끊기지 않았다. 1947년 사림과 후손들의 발의로 복원이 시작돼 1960년 사우를 복설했고, 고려 충신인 판서 이식(李湜)을 추배해 주벽으로 삼았다.
1979년에는 고려 충신 성암 이인정(誠菴 李仁挺)을 주벽으로 추배하면서 모산공과 재사당공의 위차도 바로잡았다. 허물어진 자리를 다시 세우고 순서를 바로잡아 온 이 긴 과정은, 영강사가 단지 옛 건물로 남은 곳이 아니라 선현의 충절과 학문을 후손에게 전하기 위해 오랜 세월 지켜 온 공간임을 보여 준다.
기록으로 남은 역사, 건물보다 오래 남은 정신
영강사의 역사성은 기록으로도 뒷받침된다. 이곳에는 ‘삼선생봉안록(三先生奉安錄)’, ‘재사선생봉안록(再思先生奉安錄)’, ‘원록(院錄)’, ‘영강서원심원록(榮江書院尋院錄)’, ‘영강원지단향집사록(榮江院址壇享執事錄)’이 전한다. 창건부터 훼철 이후 제단 제향까지, 영강사가 걸어온 시간이 문서 속에 차곡차곡 쌓여 있는 셈이다.
영강사에는 선현을 기리는 전통과 함께 후학을 기르고 학문을 존중했던 선비 문화의 흔적이 배어 있다. 사우의 창건과 중수, 배향 인물의 변화는 조선 시대 지방 유림의 활동과 지역 문중의 역사, 그리고 나주가 간직해 온 유교 문화의 한 단면을 조용히 들려준다.
영산강의 역사와 문화가 흐르는 나주에서 영강사는 선현의 발자취를 되새기고 지역의 뿌리를 만날 수 있는 소중한 역사문화유산이다. 화려한 볼거리보다 오랜 세월 이어진 정신의 깊이를 느끼고 싶다면 영강사를 찾아 선조들이 지켜 온 학문과 충절의 의미를 되새겨 보길 권한다.
강물이 쉼 없이 흐르듯 이곳의 시간도 멈추지 않았다. 영강사는 나주의 과거와 현재를 잇는 역사문화 공간이자, 선현의 정신을 미래 세대에 전하는 소중한 유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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