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창한 숲을 배경으로 고즈넉하게 자리한 나주 영천사(靈泉寺). 전통 한옥의 단아한 멋과 산사의 고요함이 어우러져 방문객에게 평온한 쉼을 선사한다. 사진=김미경
화려한 단청과 섬세한 불화가 어우러진 법당, 황금빛 불상들이 자비로운 모습으로 불단을 장엄하고 있다. 왼쪽에는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346호 ‘나주 영천사 목조지장보살좌상’, 중앙에는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294호 ‘나주 영천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이 자리해 불교문화의 깊이를 전한다. 사진=김미경
영천사 앞, 산과 숲을 품고 유유히 흐르는 영산강의 평화로운 풍경. 사진=김미경
울창한 숲과 아름드리나무가 감싸 안은 나주 영천사(靈泉寺). 자연 속에 고즈넉이 자리한 전통 사찰의 풍경이 산사의 깊은 정취와 평온함을 전해준다. 사진=김미경

나주시 가야산 기슭에 자리한 영천사(靈泉寺)는 지역의 불교문화와 근현대 사찰의 역사를 간직한 사찰이다. 대한불교조계종 제18교구 본사인 백양사의 말사로, 1954년 관불 스님(속명 전귀례)이 창건했다. 오랜 세월 지역민의 삶과 함께해 온 영천사는 사찰의 창건 이야기와 여러 불상의 이운 기록을 통해 나주 불교문화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전해지는 이야기, 옛 절터의 흔적

지역 주민들의 전언에 따르면 영천사가 들어서기 전 이곳에는 ‘해동암’이라는 암자가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빈대가 극심해 결국 폐사됐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영천사 창건 당시 법당을 세우는 과정에서 금불상과 고려청자 등 여러 유물이 발견됐다는 이야기도 있으나, 현재 이를 확인할 수 있는 자료는 명확하지 않다.

이러한 전승은 영천사 주변에 과거 사찰이 존재했을 가능성을 떠올리게 하지만, 구체적인 역사적 사실로 확정하기 위해서는 추가적인 문헌과 유물 조사가 필요하다.

관불 스님의 원력으로 세워진 영천사

1954년 관불 스님이 창건한 영천사는 처음에는 인법당(因法堂)을 중심으로 운영됐다. 인법당은 별도의 대규모 법당을 갖추기 어려운 경우 법당과 생활공간의 기능을 함께하는 건물을 가리킨다.

영천사의 역사에서 주목할 부분은 사찰에 봉안된 불상들이다. 이 불상들은 서로 다른 사찰과 장소에서 옮겨 온 것으로 기록돼 있어, 영천사의 창건 과정뿐 아니라 근현대 한국 불교문화재의 이동과 보존 역사를 살펴보는 데에도 의미가 있다.

목조아미타여래좌상에 얽힌 이운 기록

영천사에는 폐사된 보덕사에서 옮겨 온 것으로 전해지는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이 봉안됐다. 이 불상의 출처에 대해서는 관련 기록마다 차이가 나타난다.

1969년 5월 2일 영천사가 본사인 백양사에 제출한 문화재 실태조사 보고서에는 8·15 광복 당시 파괴된 보덕사에서 불상을 모셔 왔다고 기록돼 있다. 반면 1974년 3월 1일 자 공문에는 여래상과 지장보살상을 나주읍내의 일본 사찰에서 모셔 왔다고 적혀 있다.

또한 1993년 10월 15일 남운 스님이 작성한 성보목록대장에는 여래상을 백양사 천진암에서 전 주지 스님이 모셔 왔으며, 지장보살상은 일제강점기에 일본 승려가 본원사에서 모시고 있었다는 내용이 기록돼 있다.

이처럼 문헌에 따라 출처가 다르게 나타나지만, 사찰을 창건한 관불 스님이 직접 작성한 기록을 중심으로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은 보덕사에서 이운된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러한 기록의 차이는 불상의 이동 경로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일본 사찰에서 옮겨 온 목조지장보살유희좌상

영천사에는 일본 불교와 나주 지역의 근현대사가 교차하는 또 하나의 불상 이야기도 전해진다. 목조지장보살유희좌상은 일본 진종 오타니파의 혼간지(本願寺) 나주군 영산포 포교소와 관련된 불상으로 기록돼 있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해방 이후 본원사에 머물던 일본 승려들이 모두 떠났고, 관불 스님이 한동안 그곳에 머물렀다가 영천사를 복원한 뒤 불상을 옮겨 봉안했다고 한다.

이 기록은 일제강점기 영산포 지역에 일본 불교 포교소가 존재했으며, 해방 이후 종교시설과 불교 유물의 이동이 이뤄졌음을 보여주는 자료로 주목할 만하다. 다만 불상의 정확한 제작 시기와 이동 경위는 관련 기록을 토대로 신중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나주의 불교문화와 근현대사를 만나는 곳

영천사는 1954년 창건된 사찰이지만, 그 안에 봉안된 불상과 관련 기록에는 그 이전부터 이어진 사찰의 흔적과 일제강점기, 광복 이후의 역사까지 여러 시대의 이야기가 겹쳐 있다.

특히 보덕사와 백양사 천진암, 영산포 본원사 등 여러 사찰의 이름이 등장하는 기록은 나주 지역 불교문화의 연결 관계를 살펴볼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한다. 서로 다른 문헌에 나타난 차이를 비교하고 불상의 유래를 추적하는 일은 지역 문화유산의 가치를 더욱 깊이 이해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가야산 기슭의 영천사는 화려한 규모보다는 창건의 원력과 불상에 얽힌 기록을 통해 나주의 종교문화와 근현대사의 흔적을 전하는 공간이다. 나주의 역사와 문화유산을 찾아가는 길에 영천사를 함께 살펴본다면, 한 사찰에 깃든 신앙과 기억, 그리고 지역의 역사를 새롭게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이 기사는 보건복지부·한국노인인력개발원이 주최하고 사회적협동조합 시니어신문네트워크가 주관하는 ‘2026 노인자원봉사 활성화 지원사업’의 일환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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