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픽사베이

태어나서 난생처음 모 떼우기에 도전했다. “자네는 힘들어서 못하네”라며 극구 말리는 남편의 말을 뒤로하고 물신을 신었다. 직장과 힘든 농사일을 병행하는 남편의 고단함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다. 늘 남편은 물신을 신고 논 한가운데서 모를 떼우곤 했다. 힘들다고 했던 그 말들이 경험해보지 못한 나에게는 그냥 농촌의 낭만적인 풍경 중 하나로만 여겨졌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직접 논 가장자리에서 물속으로 한 포기의 모를 심는 순간, 그 모든 것이 달랐다.

논바닥 흙의 감촉은 머드팩을 할 때 피부에서 느껴지는 매끄러움처럼 신기하게 다가왔다.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그 자연스러운 감촉에 기분이 좋아졌다. 우렁이 농법을 하는 논이라 올챙이와 미꾸라지가 마치 자기네 놀이터인 양 자유롭게 헤엄쳐 다닌다. 순간 깨달았다. 논 속에서도 다양한 생명들이 각자만의 삶의 빛깔로 생명을 이어가고 있다는 것을. 이 작은 깨달음이 논농사에 대한 더 큰 이해로 이어졌다.

갈수록 인구가 감소하고 쌀이 남아돈다며 정부는 쌀을 대체하는 다른 농작물 재배를 권한다. 하지만 쌀농사는 단순히 쌀 생산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논에 고인 물은 대지에 수분을 공급하고 대기 중 습도를 조절한다. 여름철 폭염을 완화하고 겨울철 건조함을 달래주는 천연 가습기 역할을 한다. 또한 논은 홍수를 막는 자연 저수지이자, 지하수를 충전하는 소중한 공간이다.

더 나아가 논은 생태계의 보고다. 벼와 함께 자라는 수많은 식물들, 그 사이를 누비는 곤충들, 논에서 먹이를 찾는 새들까지. 논 하나가 완전한 생태계를 이루며 생물 다양성을 지켜나간다. 우렁이가 잡초를 먹어주어 농약 없이도 건강한 벼를 기를 수 있게 하고, 미꾸라지와 올챙이들이 해충을 잡아주는 자연스러운 순환이 이루어진다.

논농사는 몸의 양식인 쌀뿐만 아니라 마음의 양식도 기른다. 계절의 변화를 온몸으로 느끼며 자연의 리듬에 맞춰 살아가는 지혜를 배운다. 씨앗을 뿌려 못자리를 만들어 모를 기르고 심고 거두는 과정에서 인내와 희망을, 기다림의 미학을 터득한다.

문득 남편도 이 논농사를 통해 우리 가족의 삶을 지켜왔다는 생각이 든다. 논바닥에 발이 빠져 끙끙대기도 하고 논바닥에 넘어지기도 하다 보니 남편의 수고로움에 진심으로 감사하게 되었다. 또한 자연의 모든 생명들이 곳곳에서 이렇게 연결되어 있음도 알아가게 되었다.

정부에서 쌀농사를 지켜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논농사는 자연도 인간도 지키는 진정한 생명농업이기 때문이다. 단순한 경제적 효율성을 넘어서 환경을 보전하고 생태계를 지키며 우리의 정신적 토대까지 든든히 받쳐주는 소중한 문화유산인 것이다.

모든 삶은 이렇게 서로에게 기대어 성장하고 익어간다. 논에서 자라는 벼처럼, 가족 안에서 서로를 지탱하며 살아가는 우리들처럼. 그 깨달음이 내 마음속에서도 서서히 익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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