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부터 시작된 장마가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창밖으로 내리는 빗줄기를 바라보며 남편이 말했다.
“오늘 우렁이 뿌려야 하는데…”
농사에는 때가 있다. 특히 우렁이 농법은 더욱 그렇다. 모가 어린 지금이 아니면 우렁이들이 벼까지 해칠 수 있으니까. 남편은 벌써 몇 년째 화학농약 대신 우렁이로 잡초를 잡아왔다. 덕분에 우리 집 밥상에는 늘 안전하고 맛있는 쌀이 올라온다.
“비가 오니까 자네는 집에 있으소.”
남편의 말에도 불구하고 나는 비를 피할 수 있는 모자가 달린 옷을 꺼내 입었다. 혼자 보낼 수가 없었다. 논으로 이동하기 위해선 남편은 늘 오토바이를 이용한다. 오랜만에 비를 맞으며 오토바이를 타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
오토바이 뒤에 앉으니 문득 40년 전이 떠올랐다. 포항에서 만났던 그 시절, 우리는 늘 오토바이를 타고 다녔다. 그때는 공무원들이 모두 자전거나 오토바이로 이동하던 시절이었으니까. 출장도, 야근 후 퇴근도, 데이트도 모두 오토바이였다.
빗방울이 얼굴을 스치고 지나간다. 남편의 등을 보며 그때 그 젊은 남자를 떠올린다. 그 시절 우리는 지금의 모습을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꿈도, 현실도, 외모도 모든 것이 변했지만, 이상하게도 남편을 향한 마음은 변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 깊어졌다. 사랑이라기보다는 이제 측은지심에 가깝다. 서로를 아끼고 보살피는 마음.
논에 도착하니 연초록 모들이 빗물을 머금고 반짝이며 우리를 반긴다. 남편은 말없이 우렁이 자루를 어깨에 메고 논두렁을 따라 걸어간다. 한 걸음 한 걸음 정성스럽게 우렁이를 뿌리는 모습을 멀리서 바라본다.
작은 우렁이들이 논물 속으로 사라진다. 이 작은 생명들이 벼와 더불어 살아가며 잡초는 먹고 벼는 지켜줄 것이다. 자연의 이치란 참 신비롭다. 서로 다른 생명이 함께 살아가며 서로를 돕는다.
지금 이 어린 모들이 몇 달 후에는 황금 들녘이 될 것이다. 우렁이와 벼가 함께 만들어낸 결실. 우리의 삶도 그렇지 않을까. 서로 다른 두 사람이 만나 40년을 함께 살아오며, 때로는 서로를 지켜주고 때로는 함께 성장하며, 이렇게 아름답게 익어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빗속에서 일하는 남편의 뒷모습이 40년 전 그 청년과 겹쳐 보인다. 변한 것도 많지만 변하지 않은 것도 있다. 성실함과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 그리고 가족을 위하는 마음.
오늘도 우리는 함께 자라고 있다. 논의 벼처럼, 자연의 모든 생명들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