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퇴근길, 지하철에서 내려 숨을 헐떡이며 버스 정류장에 도착했지만, 눈앞에서 막 출발하는 버스의 뒷모습을 바라봐야 했습니다. 그 순간 밀려온 아쉬움이 곧 뜻밖의 선물로 바뀌리라고는 꿈에도 몰랐습니다. 예상치 못한 20분이라는 시간이 내게 고요히 안겨온 것입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는 시구가 문득 현실이 되어 눈앞에 펼쳐졌습니다. 늘 그저 스쳐 지나치던 그 자리에, 마치 깊은 숲속에서나 만날 법한 아름다운 가로수길이 있었던 것입니다. 수많은 날 이곳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탔건만, 이렇게 아름다운 길이 바로 여기 있었다는 걸 이제야 알게 되었습니다.
아, 멈춤이란 이런 것이구나. 바쁜 발걸음을 잠시 늦추니,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었습니다.
텅 빈 가로수길을 천천히 걸어보았습니다. 아무도 없는 그 길을 온전히 나 혼자 누리는 호사를 맛보았습니다. 자동차들의 요란한 경적 소리 사이로 스며드는 새들의 지저귐은 이곳을 진짜 자연 속 숲길로 변화시켰습니다. 도심 한복판에서 만난 이 작은 기적 앞에서, 나는 한없는 감사와 행복에 젖어들었습니다.
그 순간만큼은 삶의 모든 무게가 사라졌습니다. 마치 원석 같은 순수한 빛깔로 내 온몸이 물들어가는 듯한 황홀함이었습니다.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피어나는 ‘감사’라는 것이 바로 이런 느낌이구나 하는 깨달음까지 덤으로 얻었습니다.
찰나의 순간에도 잠시만 멈출 줄 안다면, 우리는 매 순간을 감사함으로 채워 살 수 있다는 이 작은 발견을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졌습니다. 아픔과 상처로 지친 우리 모두가, 사실 모든 것이 감사이고 모든 것이 행복임을 알아차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버스를 놓친 그 20분이 내게 가르쳐준 것은 이것이었습니다. 때로는 ‘놓치는 것’이 ‘얻는 것’이고, ‘멈추는 것’이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라는 삶의 역설을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