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기구
농업 혁명, 철제 농기구 영산강 유역의 농경을 이끈 철제 낫과 보습. 철기 기술로 생산력을 높인 마한인들의 번영을 담고 있습니다. 사진=정웅남(국립나주박물관)
철의 나라 영산강의 농업 혁명 — 국립나주박물관 전시관에 진열된 ‘철제 농기구 및 도구류’ 전경. 사진=정웅남(국립나주박물관)
덩이쇠(철정) 무더기 유물] 고대 화폐, 덩이쇠(철정).물물교환을 넘어 무역 결제 수단으로 쓰인 마한의 경제력과 철기 기술을 보여줍니다. 이미지=생성형인공지능(정웅남)

풍부한 철 자원과 뛰어난 제련 기술을 바탕으로 영산강 유역이 구축한 고대 교역의 핵심 동력
​물물교환을 넘어 화폐 기능까지 수행하며 삼국 및 왜(倭)와의 해양 무역을 주도한 ‘덩이쇠(철정)’
​농업 생산력 증대와 경제적 번영을 이끌어낸 마한인들의 고도화된 상업·경제 시스템

비옥한 나주평야를 적시며 흐르는 영산강의 대지는 예로부터 풍부한 농경 생산력뿐만 아니라, 고대 동아시아 교역의 중심지로서 막대한 부를 축적한 문명의 요충지였다. 앞서 살펴본 소박한 생활 토기들과 철제 농기구들이 마한인들의 일상과 실질적인 생산력을 대변했다면, 이번 제25부에서 집중 조명할 **‘덩이쇠(철정)’**는 당시 영산강 유역 마한 사회가 지녔던 눈부신 경제력과 국제적 교역망의 실체를 보여주는 가장 강력하고 명백한 증거다.

​고대 사회에서 철은 곧 국가의 군사력과 경제력을 가늠하는 절대적인 척도였다. 영산강 유역의 마한인들은 뛰어난 제련 기술을 바탕으로 질 좋은 철기를 대량 생산하였으며, 그 철을 일정한 규격의 판 모양이나 덩이 형태인 ‘덩이쇠(철정)’로 가공하여 유통했다. 이 덩이쇠는 단순한 철의 원자재를 넘어, 오늘날의 화폐와 같은 강력한 교환 수단으로 기능하며 고대 상업과 무역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꿨다.

교역의 판도를 바꾼 고대 화폐, 덩이쇠의 경제적 파급력

삼국사기와 중국의 사서 등 고대 문헌 기록에 따르면, 마한 지역에서는 철을 생산하여 낙랑과 변한, 그리고 바다 건너 왜(倭)에까지 수출했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실제로 나주 반남면을 비롯한 영산강 유역의 주요 유적에서는 철정을 무더기로 쌓아 올린 형태의 출토 유물들이 확인된다.
​이 덩이쇠는 일정한 중량과 규격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에, 물물교환의 한계를 뛰어넘어 가치를 매기는 보편적 기준이자 화폐로 사용되기에 충분했다. 마한의 상인들은 영산강 수로를 활용해 이 덩이쇠를 인접한 세력권으로 대량 유통하였으며, 이를 매개로 중국의 선진 문물과 화려한 장신구, 그리고 다양한 해양 특산물을 거침없이 수입해 올 수 있었다. 즉, 덩이쇠는 단순한 쇳조각이 아니라 영산강 세력이 동아시아 해양 무역의 중심에서 국제 경제를 주도할 수 있도록 만든 ‘고대의 기축 통화’였던 것이다.

철의 공업화와 체계적인 물류 시스템이 낳은 번영

이처럼 덩이쇠가 원활하게 생산되고 유통될 수 있었다는 사실은, 당시 영산강 유역 마한 사회가 단순히 몇몇 부족의 연맹 수준을 넘어선 고도로 조직화된 산업 클러스터와 행정력을 갖추고 있었음을 방증한다. 철광석의 수급부터 정교한 제련, 규격화된 주조, 그리고 수로를 이용한 대규모 물류 이동에 이르기까지 일련의 체계적인 시스템이 완벽하게 맞물려 돌아갔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비옥한 대지에서 거둬들인 풍부한 쌀과 곡물은 철을 생산하고 교역하는 노동력의 든든한 기반이 되었고, 다시 그 철로 만든 덩이쇠와 농기구는 더 거대한 경제적 부와 생산력의 극대화를 불러왔다. 선순환의 고리 속에서 영산강 유역의 지배층과 민초들은 물질적 풍요를 누리며 독창적이고 찬란한 마한 문화를 꽃피울 수 있었다.

[기자수첩]

​박물관의 깊은 쇼케이스 안에서 묵직한 빛을 뿜어내는 덩이쇠 무더기를 마주하고 서면, 수천 년 전 이 땅을 누비며 활기찬 상거래와 해양 교역을 벌였던 마한 상인들의 발걸음이 고스란히 전해져 오는 듯하다. 거친 쇳물을 녹여 평화와 번영의 통용 가치를 만들어 낸 선조들의 지혜는,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이 고향 나주의 대지 위에서 여전히 꺼지지 않는 경제적 자부심의 불꽃으로 살아 숨 쉬고 있다.

​이어질 제26부 [바닷길을 통해 건너온 외국의 보물들, 반남면의 ‘글로벌 해양 무역’] 에서는 영산강의 물길을 타고 세계로 뻗어나간 마한의 더 넓은 대외 교역과 눈부신 문화 접촉의 현장을 심층 보도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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