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의 정자 10선 기획연재 다섯 번째 여정으로 찾은 곳은 나주시 다시면 동당리 864-11에 위치한 ‘석관정’이다. 이곳은 영산강변의 기암절벽 위에서 굽이쳐 흐르는 강줄기와 탁 트인 풍광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명소이다.
석관정은 영산강 본류와 고막천 지류가 만나 물살이 거세게 휘돌아 나가는 절벽 지대에 자리하고 있다. ‘석관’은 바위가 강가나 물속으로 뾰족하게 뻗어 나온 지형을 뜻하는 말로, 이 정자를 처음 보수하고 가꾼 함평 이씨 이진충의 호이기도 하다.

석관정을 찾아가는 길은 예사 정자와는 다른 운치를 더해준다. 길가에 기다란 포플러나무 가로수가 이국적인 풍경을 자아내며, 입구에는 ‘석관귀범’ 표지석이 눈에 띈다. 이는 해질녘 노을빛을 받으며 석관 나루로 조용히 들어오던 돛단배의 운치 있는 풍경을 뜻한다.

최화의 ‘석관정기’에는 정자 앞을 지나는 강물의 역동적인 소리와 돛단배가 오가는 나루터 풍경, 그리고 선비들이 모여 풍류를 즐기던 정경이 담겨 있다. 지금도 이곳에는 석관 나루터의 흔적이 남아 있다.

석관정은 이진충의 증조부인 함성군 이극해가 1480년 세운 인수정이 원류이다. 이후 1530년 신녕현감을 지낸 이진충이 인수정을 보수·재건하면서 석관정으로 고쳐 불렀다. 1597년 정유재란으로 소실되었으나 역사의 아픔을 극복하고 여러 차례의 재건을 거쳤고, 1989년 현재의 석조 건물로 중건되어 조상의 유적을 영구히 보존하려는 후손들의 뜻을 이어오고 있다.
건물 구조는 정면 2칸, 측면 2칸 규모의 팔작지붕 한옥이다. 중앙에 방을 두지 않고 사방이 탁 트인 마루 구조를 취해 어느 방향에서든 강바람과 주변 풍경을 감상하기에 최적화되어 있다.
석관정 내부에는 주요 기문과 시판이 보존되어 있다. 최화의 ‘석관정기’에는 정자 건립과 이어온 내력이, 후손 계명의 ‘석관정 수리운 7언 율시’에는 병풍 같은 기암절벽과 영산강 물결의 생동감 넘치는 풍경이 담겨 있다. 또한 양수성 최광언, 행주사 계상 등 지역 문인들이 차운을 지으며 교류하던 흔적도 편액으로 남아 있다.
또한 후손 광헌이 지은 중수기에는 종친들이 기금과 노력을 모아 정자를 다시 세운 과정이 기록되어 문중의 결속력과 효심을 전하고 있다.
후손 무헌은 차운시를 통해 석관정과 주변 경관을 상세히 전했다. 비단 같은 강가에 새로 세워진 붉은빛 정자와 신이 그린 듯한 산세의 풍경, 황금빛으로 익어가는 들판의 풍성함, 오랜 세월을 지켜온 묵직한 바위의 경외감을 표현했다. 아울러 세속의 벼슬을 내려놓고 배를 띄워 자연 속에서 유유자적하고자 하는 퇴직 후의 소회를 담담히 밝혔다.
석관정은 단순한 옛 놀이 공간을 넘어, 조선시대 선비들이 자연 속에서 심신을 수양하고 학문과 우정을 나누던 유서 깊은 공간이다. 나주의 으뜸 정자인 이곳에서 일상의 분주함을 내려놓고 잠시 몸과 마음을 쉬어가는 치유의 시간을 가져보자. 영산강 정자 문화가 지닌 소중한 가치를 깊이 있게 느껴볼 수 있을 것이다.


결실의 계절이 다가오는 가을, 영산강 좌우로 펼쳐진 황금빛 들판을 감상하며 영모정과 장춘정을 거쳐 석관정까지 나주의 아름다운 정자 3곳을 둘러보는 여행을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 여정을 마친 뒤에는 인근 구진포 삼거리로 발걸음을 옮겨, 과거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 장어 산지로 명성이 높았던 구진포만의 깊은 풍미를 담은 장어요리로 든든하게 미식의 즐거움을 더해보는 것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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