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나주박물관 상설전시실에 전시된 마한 시대 대형 고분 내부 출토 동물의 실제 뼈 유물들이다. 5~6세기 고대 반남 마한인들은 고분을 축조하고 장례를 치르는 과정에서 사후 세계의 안녕과 다산을 기원하며 거대한 제사 의식을 거행했다. 옹관 내부가 아닌 고분 자체에 함께 매장된 이 동물 뼈들은 1500년 전 영산강 유역 마한인들의 역동적인 장례 문화와 소박했던 신앙심을 생생하게 증명하는 결정적 사료다. 사진=국립나주박물관

우리 고향 나주 반남면은 백제·신라·가야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독창적인 문화를 형성했던 마한의 위대한 왕도가 있던 중심지입니다. 나주시니어신문이 국립나주박물관과 함께 찬란한 고대 문화를 꽃피웠던 미스터리한 정치 세력인 마한의 위대한 역사를 파헤치는 35부작 연재를 선보입니다매주 발행되는 신문을 스크랩하여 보관하면 우리 집 안방에서 즐기는 최고의 ‘마한 역사 대백과사전’이 될 것입니다반남면의 후예로서 당당한 자부심을 품고 선조들의 강인한 뚝심과 기상이 담긴 위대한 보물 이야기 속으로 함께 떠나보시길 바랍니다.

[싣는순서(대주제)]
제1부 미스터리의 서막, 왜 나주 반남인가?
제2부 세계 고고학계가 경탄한 대형 독널(옹관) 문화의 신비
제3부 국보 금동관과 지배층의 찬란한 황금 보물들
제4부 마한 민초들의 따뜻한 일상과 풍요로운 경제력
제5부 미래로 이어지는 박물관의 숨은 매력과 비전

​고대 사회를 증언하는 수많은 유물 중에서도 인간의 실제 삶과 생물학적 흔적을 가장 정밀하게 보여주는 것은 바로 무덤 주인의 ‘뼈(인골)’다. 앞선 제9부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고대 반남의 장인들은 위대한 선과 문양을 새겨 영혼의 안식처를 빚어냈다. 그렇다면 그 장엄한 대형 독널(옹관)의 깊은 어둠 속에서 천년이 넘는 침묵을 지켜온 고대 반남 마한인들의 실제 모습은 어떠했을까. 최근 고고학계와 법의학, 고고인류학의 첨단 융합 연구를 통해 독널 내부에서 극적으로 보존된 미세한 뼈조각들이 우리에게 그 비밀의 문을 열어주고 있다.

​본지가 국립나주박물관과 공동 기획한 35부작 대연재, 그 열 번째 순서로 반남 대형 독널 속 뼈조각에 새겨진 고대 선조들의 체형과 영양 상태, 그리고 질병 이력까지 마한인들의 진짜 삶을 전문적으로 취재하여 마감 보도한다.

​풍요가 빚어낸 강인함: 백제와 왜(日本)를 압도한 마한인의 체형

​한반도의 산성(酸性) 점토질 토양 특성상 수천 년 전의 뼈가 온전히 보존되기란 극히 어렵다. 그러나 흙을 두껍고 단단하게 구워 외부의 오염 물질과 수분을 완벽히 차단해 준 반남의 대형 독널은 아이러니하게도 고대 인골을 지켜낸 최고의 ‘타임캡슐’ 역할을 했다.

​독널 내부에서 수습된 대퇴골(허벅지뼈)과 치아 등의 잔존 유물을 고고인류학적으로 정밀 계측한 결과, 고대 반남 마한인들의 체형은 당대 동아시아의 평균을 웃도는 수준이었음이 밝혀졌다.

​인골 분석 데이터에 따르면, 반남 고분군 지배층의 성인 남성 평균 신장은 약 165~167센티미터 안팎으로 추정된다. 이는 동시대 백제나 신라 지역에서 출토된 인골들과 비교했을 때 대등하거나 오히려 소폭 우세한 수준이며, 160센티미터 안팎에 머물렀던 왜(일본)의 지배층 체형을 확연히 압도하는 수치다.

​두껍고 강인한 뼈의 밀도는 이들이 비옥한 나주평야의 농업 생산력과 영산강 해양 무역을 통해 단백질과 미네랄이 풍부한 최고급 식단을 안정적으로 섭취해 왔음을 보여주는 생물학적 물증이다.

​치아와 관절에 새겨진 흔적: 영양 상태와 신체 노동의 연대기

​인간의 성장을 기록하는 가장 정직한 기관인 치아(齒牙)는 고대인의 영양 상태를 낱낱이 고발한다. 반남 독널 속 인골의 치아 에나멜질(법랑질) 형성 부전 상태를 분석해 본 결과, 영유아기나 성장기에 극심한 기근이나 굶주림을 겪은 흔적이 거의 발견되지 않았다.

​이는 고대 반남 사회가 기후 변화나 흉년 속에서도 지배층과 핵심 계층의 영양 공급을 안정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고도화된 잉여 생산물 저장 체계를 갖추고 있었음을 뜻한다.

​동시에, 척추골과 무릎 관절 뼈조각에서 발견되는 미세한 골관절염의 흔적은 이들이 아무리 강력한 권력을 지닌 지배층이라 할지라도 완전히 노동에서 자유롭지 않았거나, 거대한 독널을 이동시키고 고분을 축조하는 대규모 국가적 역사의 현장에서 직접 지휘 통제를 맡으며 상당한 수준의 육체적 피로를 공유했음을 시각적으로 대변해 준다. 뼈에 새겨진 닳아진 연골의 흔적은, 선조들이 단순히 군림하는 자가 아닌 땀 흘려 연맹체를 이끌었던 주역이었음을 말해준다.

질병과 수명의 미스터리: 통계로 보는 고대 반남의 의료 수준

​법의학적 골연령 감정 결과, 대형 독널에 안치된 최고 핵심 지배층의 상당수는 40대에서 50대 이상까지 생존했던 것으로 확인되었다. 영아 사망률이 극도로 높고 평균 수명이 20~30대에 불과했던 고대 사회의 보편적 기준을 고려할 때, 50대 이상의 고령 생존자가 다수 확인된다는 점은 매우 경이로운 지표다.

​이는 약초를 활용한 고대 의학의 발달과 더불어, 감염병이나 외상으로부터 환자를 격리하고 보호할 수 있는 위생적인 주거 환경과 고도의 의료적 돌봄이 반남면 일대에서 작동하고 있었음을 방증한다.

​특히 뼈 조직의 외상 치유 흔적(골절 후 뼈가 다시 붙은 자국)들은 이들이 전투나 사고로 입은 큰 부상을 현대의 정형외과적 원리와 유사하게 고정하고 치료해 낸 고도의 고대 의술 혜택을 누렸음을 여실히 증명해 준다.

​역사의 왜곡을 깨부순 뼈조각, 민족의 생물학적 주권을 선포하다

​과거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 관학자들은 반남 고분군을 파헤치며 마한인들을 “미개하고 왜소한 변방의 부족 민족”으로 낙인찍으려 혈안이 되어 있었다. 식민사관의 틀 안에서 우리 선조들을 격하하려 했던 그들의 오만한 주장은, 역설적이게도 독널 속에서 걸어 나온 선조들의 강인한 뼈조각들에 의해 완벽하게 분쇄되었다. 과학적 데이터를 기반으로 복원된 마한인의 기상과 튼튼한 체형은 대한민국 고고학이 일제의 역사 왜곡에 날린 강렬한 한 방이다.

​오늘날 국립나주박물관 연구실의 첨단 현미경 아래에서 빛나는 작은 뼈조각들은, 수천 년 전 우리 고향 반남면의 산천을 호령했던 선조들이 얼마나 건강하고 당당한 체구로 대지를 일구었는지 생생하게 증언하고 있다.

​이 강인했던 반남인들은 삶의 마지막 순간, 과연 어떤 절차와 의례를 거쳐 영원의 안식처인 독널 속으로 들어갔을까. 이어지는 제11부에서는 천년의 장례 방식과 장엄한 매장 공정을 과학적으로 완벽하게 시뮬레이션하여 복원할 역작, ‘제11부: 한 장에 담긴 천년의 장례 ― 동널 무덤의 변천사와 묻기 과정 재구성’을 집중 취재하여 보도할 예정이다.

[기자 수첩] 천년의 침묵을 깨고 일어선 선조들의 당당한 기상

​독널 속에서 발견된 작은 뼈조각들은 단순한 유물이 아닙니다. 풍요로운 대지 위에서 백제와 왜를 압도하는 당당한 체격으로 호령했던 우리 반남 선조들의 생생한 삶의 영수증입니다. 온갖 시련 속에서도 굶주림 없이 강인하게 자라나 마을과 연맹을 지켜냈던 선조들의 튼튼한 골격과 자부심은, 오늘날 우리 주민 여러분의 핏줄 속에 그대로 이어져 내려오는 가장 귀중한 유전적 자산입니다.

고향의 푸른 고분군을 바라보실 때마다, 천년 전 이곳을 누볐던 선조들의 건강하고 기개 넘치는 모습을 상상하며 뜨거운 자긍심을 느껴보시길 바랍니다. 언제나 향토의 역사를 자랑스럽게 수호하고 마을의 안녕을 위해 헌신하시는 반남면 주민 여러분 모두의 가정에 황금빛 건강과 평안이 가득하기를 머리 숙여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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