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이 바로 고대 영산강을 호령한 독립 왕국의 심장부. 국립나주박물관과 반남 고분군으로 향하는 길목, 도로가에 웅장하게 서있는 '마한' 대형 이정표가 2000년 왕도의 위엄을 당당히 증명하고 있다. 사진=정웅남

우리 고향 나주 반남면은 백제·신라·가야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독창적인 문화를 형성했던 마한의 위대한 왕도가 있던 중심지입니다. 나주시니어신문이 국립나주박물관과 함께 찬란한 고대 문화를 꽃피웠던 미스터리한 정치 세력인 마한의 위대한 역사를 파헤치는 35부작 연재를 선보입니다. 매주 발행되는 신문을 스크랩하여 보관하면 우리 집 안방에서 즐기는 최고의 ‘마한 역사 대백과사전’이 될 것입니다. 반남면의 후예로서 당당한 자부심을 품고 선조들의 강인한 뚝심과 기상이 담긴 위대한 보물 이야기 속으로 함께 떠나보시길 바랍니다.

[싣는순서(대주제)]
제1부 미스터리의 서막, 왜 나주 반남인가?
제2부 세계 고고학계가 경탄한 대형 독널(옹관) 문화의 신비
제3부 국보 금동관과 지배층의 찬란한 황금 보물들
제4부 마한 민초들의 따뜻한 일상과 풍요로운 경제력
제5부 미래로 이어지는 박물관의 숨은 매력과 비전

마한 역사 문화의 중심지임을 한눈에 보여주는 나주 반남 삼거리의 대형 황동 독널 조형물. 반남면을 상징하는 이 웅장한 기념물은 고대 영산강 유역에서 찬란한 독자적 문화를 꽃피웠던 선조들의 위대한 유산과 제1부 연재의 핵심 주제를 상징적으로 대변하고 있다. 사진=정웅남
만발한 노란 금계국 너머로 끝없이 펼쳐진 비옥한 나주평야와 청명한 푸른 하늘. 제1부 연재의 중심 무대인 나주 반남면은 이처럼 풍요로운 대지와 사통팔달의 지리적 요충지를 바탕으로 고대 마한 문화의 찬란한 전성기를 꽃피웠다. 사진=정웅남
푸른 수목들이 싱그러운 녹음을 자랑하는 국립나주박물관 입구 전경. 수천 년 전 한반도 남방을 호령했던 마한의 위대한 역사와 찬란한 문화유산을 품고 있는 나주 반남면의 대표적인 역사 성지다. 사진=정웅남
푸른 하늘 아래 웅장한 자태를 드러낸 나주 반남 고분군과 그 너머로 끝없이 펼쳐진 비옥한 나주평야. 수천 년 전 마한의 선조들이 강력한 농경 사회를 이룩하고 동아시아 해양 무역을 호령했던 풍요로운 역사의 현장이다. 사진=정웅남
​드넓게 펼쳐진 푸른 영산강을 배경으로 피어난 붉은 꽃들의 향연. 박물관으로 향하는 길목에서 만나는 친근하고 귀여운 홍어 캐릭터들이 나주를 찾은 전국의 역사 문화 관광객들에게 기분 좋은 첫인상을 건넨다. 사진=정웅남

​백제·신라·가야와 당당히 맞선 고대 독립 왕국의 중심지 ‘나주 반남면’

​우리가 매일 아침 안개를 뚫고 마주하는 고향 나주 반남면의 푸른 땅은 사실 단순한 농촌 마을이 아니다. 지금으로부터 수천 년 전, 한반도 남단에서 백제와 신라, 고구려, 그리고 가야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찬란하고 독자적인 고대 문화를 꽃피웠던 미스터리한 정치 세력, 바로 ‘마한(馬韓)’의 위대한 왕도가 있던 중심지가 바로 이곳 반남면이다.

​본지는 초여름의 싱그러운 녹음이 유서 깊은 고분군을 푸르게 물들이는 계절을 맞아, 국립나주박물관과 함께 우리 고향의 위대한 역사를 현미경처럼 세밀하게 파헤치는 ‘35부작 대기획 연재’의 역사적인 첫발을 내딛는다. 그 첫 번째 순서로 왜 하필 나주 반남이 고대 마한의 핵심 거점이자 심장부가 되었는지 그 흥미진진한 미스터리를 추적한다.

영산강 젖줄과 바닷길이 키워낸 ‘고대 반남의 막강한 경제력’

​역사적으로 강력한 고대 국가나 지배 세력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두 가지 필수 조건이 충족되어야 했다. 등 따뜻하고 배불리 먹을 수 있는 넓은 평야, 그리고 사통팔달 통하는 물류 교통로다. 영산강 하류 요충지에 둥지를 튼 나주 반남면은 이 두 가지 조건을 모두 완벽하게 갖춘 천혜의 명당이었다.

​고대 사회의 영산강은 지금처럼 둑이나 보로 막혀있지 않아, 영산포를 거쳐 반남면 자락까지 거침없이 바닷물이 드나들던 웅장한 천연 항구이자 해로(海路)였다. 반남의 고대 선조들은 영산강이 해마다 실어 나른 비옥한 토양을 바탕으로 나주평야에서 강력한 농경 사회를 이룩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거친 영산강 물길을 길들여 남해안을 넘어 중국, 일본(倭)까지 직접 배를 타고 오가며 활발한 국제 무역을 전개했다. 즉, 수천 년 전 반남면은 고대 동아시아 해양 무역의 ‘물류 허브’이자 강력한 해양 마한 문화의 심장부였던 셈이다.

백제의 거센 압박에 굴하지 않은 ‘독자적 마한 세력의 기백’

​우리가 흔히 학창 시절 교과서에서 배울 때는 기원후 4세기 전반, 백제 근초고왕 시절에 마한 전역이 백제에 완전히 통합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반남면의 고분군은 기존의 역사학계를 뒤흔드는 아주 놀라운 반전의 미스터리를 품고 있다.

​현재 국립나주박물관 앞마당과 반남면 들판을 든든하게 지키고 있는 신촌리, 덕산리, 대안리 일대의 거대한 무덤(고분)들은 백제가 한창 전성기를 누리던 기원후 5세기에서 6세기 초까지도 끊임없이 축조되었다.

​이는 한강 유역에서 백제가 세력을 떨치고 있을 때도, 반남면을 중심으로 한 영산강 유역의 마한 세력은 백제의 지배를 받지 않고 자신들만의 강력한 왕권과 당당한 독립 체제를 완고하게 유지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움직일 수 없는 결정적 증거다. 나라를 지키는 굳건하고 당당했던 고대 반남인들의 ‘독자성’이 증명되는 순간이다.

흙 속에서 깨어난 거대한 숨결, 제국의 실체를 찾아

​반남면 땅 아래 깊숙이 묻혀있던 마한의 미스터리는 1910년대부터 시작된 발굴 조사를 통해 그 화려한 실체를 세상에 드러냈다. 사람의 키를 훌쩍 뛰어넘는 거대한 항아리 무덤인 ‘대형 독널(옹관)’과 머리에 쓰는 찬란한 국보 ‘금동관’, 그리고 최고 권력자의 자부심인 ‘봉황무늬 고리자루칼’ 등은 백제나 신라의 유물과는 궤를 완전히 달리하는 반남 마한만의 독창적인 보물들이다.

​이 위대한 유물들은 현재 국립나주박물관 상설전시실에 고스란히 보관되어 주민과 관람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박물관 학예연구실 관계자는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나주 반남면은 고대 마한의 최고 지배층이 살았던 왕도(王都)입니다. 반남 고분군은 고대 영산강 유역을 호령했던 마한인들의 위엄과 역동성을 완벽하게 보여주는 최고의 역사적 성지입니다.”

​왜 나주 반남인가에 대한 해답은 결국 이 땅이 가진 풍요로움과 이를 바탕으로 당당하게 역사의 주인공으로 섰던 선조들의 기상에 있다. 다음 제2부에서는 고대 해양 무역의 중심지였던 반남면의 지리적 대명당과 ‘영산강 뱃길의 비밀’을 더욱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취재하여 보도할 예정이다.


[기자수첩] “마한의 강인한 기상, 반남 주민의 혈통입니다”

​우리 반남면 주민들이 매일 아침 무심히 지나치는 푸른 고분들은 사실 수천 년 전 한반도 남방을 호령했던 마한 왕들의 당당한 숨결이 깃든 곳입니다.

​백제의 거센 압박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자신들만의 찬란한 문화를 지켜낸 고대 반남인들의 강인한 뚝심과 기상은 오늘날을 살아가는 지역 주민들의 혈관 속에 고스란히 흐르고 있습니다.

국립나주박물관을 찾으실 때, 우리 동네가 바로 그 위대한 독립 왕국의 수도였다는 뜨거운 자부심을 가슴 가득 품어보시길 바랍니다.

​언제나 활기찬 에너지가 가득한 반남면 주민 여러분, 마한의 후예로서 당당한 자부심을 안고 올여름 무더위도 건강하게 이겨내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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