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시 왕곡면의 한적한 들녘에는 호남 선비들의 충절과 한(恨), 그리고 학문 정신을 간직한 호암서원이 자리하고 있다. 이곳은 단순한 서원이 아니라, 조선 시대 최대 사화 가운데 하나였던 기축사화(己丑士禍)의 비극을 기억하고 호남 사림들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뜻깊은 공간이다.
호암서원은 1976년 창건되었으며, 1589년 기축사화 당시 억울하게 화를 입은 호남 출신 아홉 선현의 위패를 봉안하기 위해 건립되었다. 기축사화는 조선 선조 때 일어난 대규모 정치 숙청 사건으로, 수 많은 선비들이 목숨을 잃거나 유배되었다. 특히 정여립 사건과 연루되었다는 이유로 호남지역 사림들이 집중적으로 희생되면서 지역 사회 전체가 큰 상처를 입었다.
서원 경내에는 사당인 호암사(虎巖祠), 강당인 모선당(慕先堂), 관리사, 내삼문인 경의문(敬義門), 그리고 전통 양식의 솟을대문이 자리해 고즈넉한 서원의 품격을 보여준다. 솟을대문에는 ‘광산이씨 효열문’ 편액이 걸려 있어, 당시 가문의 충절과 비극을 상징적으로 전하고 있다.
호암서원에 배향된 아홉 인물은 다음과 같다.
• 이소재 이중호
• 금호 나사침
• 곤재 정개청
• 청계 류몽정
• 만취당 이황종
• 정곡 조대중
• 북산 이급
• 동암 이발
• 남계 이길
이 가운데 주벽(主壁)으로 모셔진 인물은 이중호로, 조선 성리학의 거목 기대승을 길러낸 명망 높은 학자였다. 또한 그는 기축옥사로 참화를 입은 이발의 부친이기도 하다.
특히 이발은 정여립의 배후 세력으로 지목되면서 가문 전체가 참혹한 화를 입었다. 노모와 어린 자식들까지 희생되는 비극이 이어졌고, 광산 이씨 가문은 풍비박산이 났다고 전한다. 이 사건은 호남 선비 사회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겼으며, 오늘날까지도 지역 역사 속 깊은 아픔으로 기억되고 있다.





기축사화의 집행 중심에는 당대 문장가이자 정치가였던 정철이 있었다. 그는 뛰어난 문학가로는 높이 평가받지만, 정치적으로는 기축사화와 깊이 연결되어 있어 복합적인 역사 인물로 남아 있다. 호암서원은 이러한 역사의 빛과 그림자를 함께 보여주는 장소이기도 하다.
오늘날 호암 서원은 단순한 제향 공간을 넘어, 조선 정치사의 비극과 호남사림의 절개, 그리고 후손들의 기억이 살아 숨 쉬는 교육의 장으로 평가받는다. 고즈넉한 서원 마당을 거닐다 보면, 억울하게 스러져 간 선비들의 기개와 후손들이 지켜낸 역사 의식을 함께 느낄 수 있다.
나주를 찾는 여행객이라면 천년 고도 나주의 화려한 문화 유산 뿐 아니라, 아픈 역사 속에서도 정신을 지켜낸 호암 서원에서 깊이 있는 역사 여행을 경험해 보길 권한다. 이곳은 조용하지만 강한 울림을 주는, 나주가 간직한 또 하나의 귀중한 문화유산이다.






![[기자수첩] 공산면 형제방죽, 형제효행·공동체 정신 깃든 향토 전설](https://naju-senior.com/wp-content/uploads/2026/04/KakaoTalk_20260419_120625715_10-218x150.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