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픽사베이

이앙기가 연초록의 연한 모를 가득 싣고 탁탁탁 리듬감 있는 기계음을 내며 논 위를 천천히 누비기 시작합니다. 순식간에 논 위에는 연초록의 모로 예쁜 초록 줄들이 수놓아집니다. 이앙기가 출발했던 지점으로 다시 되돌아올 때까지 주어지는 소중한 몇 분간의 시간 동안, 연초록으로 물들어가는 초록의 물결을 바라보는 것은 모판을 옮기는 수고로움을 잊게 하는 힐링의 순간입니다.

내가 나주로 시집왔던 그 젊은 날, 80년대의 모내기 풍경이 어언 40년이라는 긴 세월 속에서 이렇게 달라져버렸구나 생각하니 잠시 추억 속으로 빠져들게 됩니다. 두 사람이 논의 끝점에서 못줄을 꽉 잡고, 그 줄을 따라 여러 사람들이 허리를 굽혀 한 포기 한 포기 정성스럽게 심어가던 그 모습들… 다 심어지면 또 줄을 한 칸 넘겨서 다시 새로운 희망을 심어가던 그 정겨운 풍경은 이제 현대를 살아가는 아이들에게는 할머니, 할아버지의 옛 이야기로만 전해질 모내기 변천사의 한 장면이 되었습니다.

모내기 변천사를 지켜보며 문득 마음 깊은 곳에서 깨달음이 밀려옵니다. 우리네 인생도 그렇게 시대의 물결을 따라 변화하면서, 각자에게 주어진 그 시대의 방식으로 온 마음을 다해 살아내는 것이 아닐까 하고 말입니다. 손으로 직접 모를 심던 그 시절에는 땀방울과 함께 흘러내린 정성의 아름다움이 있었고, 이제 기계가 대신하는 이 시대에는 또 그 나름의 효율과 여유로움이 주는 새로운 아름다움이 있는 것처럼요.

어느 날 어르신들이 그리운 듯 말씀하시던 “옛날에는 이 논에서 털게도, 민물새우도, 우렁이도 손수 잡곤 했단다”라는 이야기가 그때만 해도 그저 아득한 옛날 이야기처럼만 들렸습니다. 그런데 어느새 내가 그런 나이가 되어, 젊은 사람들에게 똑같은 그리움이 담긴 이야기를 전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습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시간은 참으로 신비롭습니다. 영원히 우리들의 삶 속에서 숨 쉬며 존재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의 소중한 하루하루를 모아 그들만의 특별한 역사로 엮어가고 있으니까요. 어쩌면 시간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얼굴은 달라져도, 우리 모두는 끊임없이 순환하는 생명의 고리 속에서 영원히 이어져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경건한 생각이 듭니다.

그러니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이 소중한 시대의 시간만큼, 그 시대에 맞는 방식으로 온 정성을 다해 살아내는 이 시대 역사의 당당한 주인공들이라는 자부심을 가져도 좋을 것 같습니다. 손모내기 시대에는 손모내기의 정겨운 아름다움으로, 기계모내기 시대에는 기계모내기의 새로운 아름다움으로, 각각 우리만의 빛깔로 인생이라는 캔버스를 채워가며 살아가는 것이니까요.

댓글을 남겨주세요

댓글을 입력해 주세요!
여기에 이름을 입력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