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의 정자 기획연재 일곱 번째로 찾은 곳은 나주시 다시면 회진리 74-1에 위치한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문화유산자료 제266호 ‘기오정’이다. 영산강의 수려한 풍광을 마주한 이곳은 조선시대 선비들이 후학을 양성하고, 문인들과 교유하며 학문과 풍류를 나눴던 공간이다.

정자 입구로 향하는 길은 정면에서 비껴 왼쪽으로 나 있으며, 완만한 경사를 이룬다. 언덕을 오르면 정자 양옆으로 배롱나무가 토방 끝에 기울어진 채 서 있다. 정자 주변은 대나무가 에워싸고 있으며, 정자 앞 영산강을 배경으로 선 감나무에는 붉게 익은 감이 달려 가을의 정취를 더한다.

기오정은 1669년 반남박씨 박세해가 건립했다. 1745년 박사신의 중수기문에는 정자 이름이 도잠의 「귀거래사」와 관련된 ‘의남창기오(倚南窗寄傲)’에서 비롯된 것으로 기록돼 있다. 이는 세속에 얽매이지 않고 자연 속에서 여유로운 삶을 누리려는 선비의 정신이 담겨 있다.

건물구조는 정면 4칸, 측면 3칸 규모의 팔작지붕이다. 서쪽 2칸은 재실형 마루 공간이고, 동쪽 2칸은 방과 툇마루로 구성됐다. 대청형 마루 위주인 일반 정자와 달리 툇마루가 있는 모습이 독특하며, 이러한 건물구조는 정자가 경치를 감상하는 곳뿐 아니라 사람들이 모여 학문을 익히고 교유하는 공간으로 활용됐음을 보여준다.

정자 내부에는 모두 13개의 현판이 걸려 있다. 중수기 2개와 축하시 9개를 비롯해 중수운 1개, 중수일의 감회를 담은 글 1개 등이다. 정자의 건립과 보수 과정을 기록한 글과 축하·감회를 담은 시문이 함께 남아 있어 정자를 둘러싼 문인들의 교류와 문중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다. ‘기오정’ 현판은 조선 후기 서예가 이광사의 글씨다.

기오정과 관련해 주목할 만한 기록은 박세해 부부의 회혼례다. 회혼례는 혼인한 지 60주년이 되는 해에 치르는 예식으로, 박세채와 박세당, 유상운, 최석정, 이건명, 임영 등 당대 명사들이 많은 축하시를 남겼다.
정자의 오른쪽에는 ‘기오정박공유허비’가 세워져 있다. 비석에는 반남박씨 가문의 유래와 기오정의 건립연혁, 박세해의 행적 등이 기록되어 있다.

후손 박천수(86·다시면) 씨는 “기오정은 후학을 양성하기 위해 방과 마루를 갖춘 강학 공간으로 지어졌으며, 이곳에서 많은 인재를 길러 냈다”며 “정자 앞 영산강에는 하루 두 차례 밀물과 썰물이 들어왔고, 동말 나루에서 배를 타고 강 건너편으로 건너가 농사를 지었다”고 전했다.
기오정 인근에는 영모정이 약 350m 거리에 자리하고 있다. 영산강변을 따라 목포 방향으로 이동하면 장춘정과 석관정 등을 둘러볼 수 있으며, 강 건너편에는 금강정과 금사정이 있다. 차로 5분 이내에는 백호문학관과 한국천연염색박물관, 나주 복암리 고분전시관과 고분군 등이 있어 기오정과 함께 주변의 역사·문화 자원을 둘러볼 수 있다.
기오정은 영산강변 정자들과 함께 문인 교류와 후학 강학의 장소였을 뿐 아니라, 당대 명사들의 축하시와 중수기문이 남아 있어 17세기 문인 문화와 가문의 역사를 잘 보여주는 소중한 문화사적 가치를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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