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 영산포 다리 인근 영산강변 보트 선착장 전경. 본지가 국립나주박물관과 공동 연재하는 ‘제2부: 고대 해양 무역의 물류 허브, 영산강 뱃길’의 역사적 무대이자, 사통팔달로 열려 있던 마한 왕도의 경제적 기반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현장이다. 사진=정웅남
푸른 영산강 물줄기 위로 고대 마한의 해양 무역선을 고스란히 재현한 배가 웅장하게 정박해 있다. 수천 년 전 반남면 선조들이 이 뱃길을 통해 서해를 건너 중국 대륙과 일본 열도까지 종횡무진 누볐던 찬란한 해양 실크로드의 역사를 시각적으로 증명하는 현장이다. 사진=정웅남
유유히 흐르는 영산강 물줄기 위, 옛 번영의 중심이었던 영산포구에 현대식 보트들이 정박해 있다. 고대 마한의 해양 무역선들이 동아시아를 호령하며 드나들던 그 뱃길은, 이제 현대적인 문물의 소통로가 되어 과거의 영광을 잇고 있다. 사진=정웅남

우리 고향 나주 반남면은 백제·신라·가야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독창적인 문화를 형성했던 마한의 위대한 왕도가 있던 중심지입니다. 나주시니어신문이 국립나주박물관과 함께 찬란한 고대 문화를 꽃피웠던 미스터리한 정치 세력인 마한의 위대한 역사를 파헤치는 35부작 연재를 선보입니다. 매주 발행되는 신문을 스크랩하여 보관하면 우리 집 안방에서 즐기는 최고의 ‘마한 역사 대백과사전’이 될 것입니다. 반남면의 후예로서 당당한 자부심을 품고 선조들의 강인한 뚝심과 기상이 담긴 위대한 보물 이야기 속으로 함께 떠나보시길 바랍니다.

[싣는순서(대주제)]
제1부 미스터리의 서막, 왜 나주 반남인가?
제2부 세계 고고학계가 경탄한 대형 독널(옹관) 문화의 신비
제3부 국보 금동관과 지배층의 찬란한 황금 보물들
제4부 마한 민초들의 따뜻한 일상과 풍요로운 경제력
제5부 미래로 이어지는 박물관의 숨은 매력과 비전

​​한 지역의 역사적 흥망성쇠를 들여다볼 때 가장 먼저 주목해야 할 것은 다름 아닌 ‘지리적 요건’이다. 고대 사회에서 강력한 세력이나 독립적인 국가가 태동하기 위해서는 배불리 먹을 수 있는 비옥한 평야와 물류의 소통을 책임지는 거대한 교통망이 필수적였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고향 나주 반남면은 수천 년 전 천혜의 조건을 모두 갖추었던 동아시아 최고의 명당이었다.

​본지가 국립나주박물관과 함께 진행하는 35부작 대기획 연재, 그 두 번째 순서로 오늘날에는 평화로운 농촌 풍경을 자랑하는 반남면이 어떻게 고대 마한의 경제와 무역을 책임지는 거대한 ‘물류 허브’이자 중심지가 될 수 있었는지, 영산강 뱃길에 숨겨진 지리적 비밀을 집중적으로 조명한다.

​바다를 품었던 거대한 천연 항구, 고대의 영산강

​오늘날 우리가 마주하는 영산강은 하구둑과 보로 막혀 잔잔한 강물의 흐름을 보이지만, 기원전후부터 고대 마한 세력이 번성했던 시기에는 전혀 다른 역동적인 모습을 하고 있었다. 당시의 영산강 하류는 서해바다의 거센 물길이 영산포를 거쳐 이곳 반남면 자락까지 거침없이 밀려들던 웅장한 해로(海路)였다.

​바닷길을 타고 육지 깊숙이 들어온 물길은 반남면 일대를 천혜의 천연 항구로 만들어주었다. 거친 외해의 파도를 막아주는 안정적인 내해(內海)의 특성을 지녔기에, 수많은 무역선이 안전하게 정박할 수 있는 최적의 요충지였던 셈이다.

​반남의 선조들은 이 거대한 영산강의 물길을 단순히 바라만 보지 않고 철저하게 길들였다. 강줄기가 실어 나른 비옥한 토양 위에 나주평야라는 농업 혁명을 일구어냈고, 동시에 거대한 뱃길을 열어 바다 너머의 세계와 연결되는 위대한 발판을 마련했다.

​중국과 일본을 호령한 고대 동아시아 해양 실크로드의 주역

​반남면이 가진 지리적 명당으로서의 진가는 강력한 ‘해양 무역’에서 폭발했다. 영산강 뱃길을 쥔 반남 마한인들은 한반도 내부의 교역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이들은 서해를 건너 중국 대륙과 직접 소통했고, 남해안을 거쳐 대마도와 일본(倭) 열도까지 종횡무진 누비며 활발한 국제 무역을 전개했다.

​당시 반남은 선진 문물과 철기 기술, 그리고 진귀한 보석류가 모이고 다시 흩어지는 고대 동아시아 해양 실크로드의 명확한 ‘종착지이자 출발지’였다.

​이처럼 사통팔달로 열려 있던 교통망은 백제나 신라와 같은 주변 강대국들의 거센 압박 속에서도, 반남면 중심의 마한 세력이 수백 년 동안 자신들만의 독립적인 체제와 강력한 왕권을 유지할 수 있었던 든든한 경제적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지리적 풍요로움이 곧 나라를 지키는 강인한 힘으로 승화된 것이다.

​대지가 증명하는 역사의 무게, 선조들의 개척 정신을 배우다

​영산강 뱃길과 반남면의 명당 구조는 단순한 과거의 전설이 아니다.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드넓은 나주평야와 맑은 하늘, 그리고 그 곁을 지키고 있는 거대한 고분군들이 바로 그 찬란했던 해양 제국의 명백한 실증이다.

​국립나주박물관 연구팀은 “반남면의 지정학적 위치는 고대 해양 마한 세력이 독자적인 성장을 이룰 수 있었던 가장 결정적인 요인이었다”고 평가하며, 이 땅의 역사적 가치를 재차 강조했다.

​우리가 딛고 선 반남의 대지는 이처럼 위대한 개척 정신과 풍요로움의 상징이다. 거친 바닷길을 헤쳐 나가며 국제 무역을 주도했던 선조들의 당당한 기상을 되새기며, 다음 제3부에서는 흙 속에서 마침내 깨어난 영산강 지배자의 실체, ‘나주 신촌리 9호분’의 극적인 발굴 비화를 생생하게 보도할 예정이다.

​[기자수첩] 영산강 푸른 물길, 당당한 반남의 역사

​둑도 보도 없이 넓고 웅장하게 흐르던 고대의 영산강은 우리 반남면 선조들에게 세계로 나아가는 거대한 고속도로였습니다. 거친 바다를 두려워하지 않고 국제 무역을 주도했던 고대 반남인들의 진취적인 기상과 뜨거운 열정은 오늘날 우리 주민들의 가슴속에 고스란히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풍요로운 평야와 강변을 걸으실 때, 이곳이 고대 동아시아를 호령했던 해양 강국의 중심지였다는 뜨거운 자부심을 다시 한번 품어보시길 바랍니다. 무더운 여름날, 반남면 주민 여러분 모두 선조들의 강인한 기운을 받아 늘 건강하고 행복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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