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평문씨 시조인 문다성의 탄생 설화가 어른거리는 장자못 전경. 사진=정성균
남평문씨 시조인 문다성을 비롯한 5명의 선조 위패를 보신 장연서원. 사진=정성균
문바위 전경및 보호각. 사진=정성균
남평문씨 선조에게 제사를 지내는 제단. 사진=정성균

전남 나주 남평읍에는 한 편의 설화와 깊은 역사, 그리고 여유로운 풍경이 어우러진 공간이 있다. 바로 장자못 역사공원이다.

이곳은 남평문씨 시조 문다성의 탄생설화를 바탕으로 조성된 역사문화 관광지로, 짧은 시간 안에 지역의 뿌리와 정서를 함께 느낄 수 있는 장소다.

장자못에 얽힌 이야기는 흥미롭다. 백제시대 남평현, 지금의 남평읍 장자못 인근 ‘문바위’에서 한 아기가 태어났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그 아기가 바로 남평문씨의 시조 문다성이다. 이후 이 가문에서는 문익점과 같은 역사적 인물이 배출되며 한국사에 큰 족적을 남겼다. 문익점은 목화씨를 우리나라에 들여온 최초의 인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 설화의 중심에 있는 문바위는 1995년 전라남도 민속자료 제32호로 지정된 유서 깊은 역사문화유산이다. 국내외 문씨 일족에게는 ‘성지’로 여겨지는 이 바위는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특히 바람과 비로 인한 훼손을 막기 위해 2000년 통일교 문선명 총재의 지원으로 보호각이 설치되면서 지금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문바위 인근에는 장연서원이 자리하고 있다. 이 서원에는 문다성을 비롯해 문익점 등 남평문씨 선조 다섯 분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고즈넉한 서원의 분위기 속에서 걷다 보면, 자연스레 시간의 깊이를 체감하게 된다. 서원 곁에 자리한 장자못(연못) 역시 설화의 배경으로, 잔잔한 수면 위로 옛 이야기가 스며드는 듯하다.

나주시는 이러한 역사적 가치를 관광자원으로 확장하기 위해 지난 2024년 11월, 약 3년간 20억 원을 투입해 역사공원 조성을 마무리했다. 공원에는 산책로와 목교, 팔각정자, 주차장 등 편의시설이 갖춰져 있어 방문객 누구나 편안하게 둘러볼 수 있다.

문바위와 서원, 연못이 한 공간에 어우러져 있어 ‘걷는 역사기행’이라는 표현이 어색하지 않다.

이곳의 상징성은 현대 정치사와도 연결된다. 남평문씨 충선공파 24세손인 문재인 전 대통령이 대선 출마 전 장연서원을 찾는 등 여러 차례 방문한 사실은 장자못의 의미를 더욱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됐다.

역사의 여운을 안고 공원을 나섰다면, 이제는 감성의 시간이다. 장자못 건너편으로는 최근 조성된 강변도시와 함께 강변 카페거리가 펼쳐진다. 유유히 흐르는 지석강을 바라보며 즐기는 한 잔의 커피는 여행의 속도를 한층 느리게 만든다.

조금 더 걸음을 옮기면 드들강 솔밭유원지가 나온다. 이곳에서는 작곡가 안성현의 ‘엄마야 누나야’ 노래비 앞에 서서 잔잔한 선율을 떠올려보는 것도 좋다.

특히 솔밭유원지 한 가운데 위치한 탁사정에 앉아 바라보는 강물은, 말없이 흐르며 오히려 많은 것을 전한다. 1587년(선조 20년)에 세워진 탁사정은 유구한 세월 쉼 없이 흐르는 드들강을 지켜보고 있다.

한때 캠핑의 명소로 이름난 드들강 유원지는 비록 자연 훼손 우려로 취사와 야영은 금지됐지만, 울창한 솔밭 아래에서 강을 바라보며 보내는 여유로움은 그 어떤 휴식보다 깊은 울림이 있다.

장자못 역사공원은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다. 설화와 역사, 그리고 현재의 감성이 겹겹이 쌓인 ‘이야기의 공간’이다. 바쁜 일상 속에서 잠시 걸음을 늦추고 싶다면, 이곳에서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시간을 경험해보는 것도 충분히 의미 있는 선택이 될 것이다.

정기 휴일이나 별도의 입장료는 없으며, 대중교통보다는 자가 차량을 이용하거나 남평읍에서 택시를 이용하는 것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