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성산의 푸른 품에 안긴 심향사(尋香寺). 나주의 도심 가까이에서 만나는 이 고즈넉한 산사는 천년의 역사와 불교문화, 그리고 오래된 나무들이 어우러진 특별한 여행지다. 사찰 담장 안으로 한 걸음 들어서면 번잡한 세상과는 다른 시간이 흐르는 듯하다. 전각 사이로 스며드는 햇살,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오래된 석탑과 나무가 만들어내는 풍경은 잠시 걸음을 늦추게 한다. 그리고 미륵전 앞에서 여행자의 눈길을 붙잡는 한 그루의 나무가 있다. 바로 심향사 모과나무다.
200년의 시간을 살아온 모과나무
심향사 모과나무는 오랜 세월 사찰을 지켜온 고목으로 알려져 있다. 높이 약 15m, 수령 약 200년의 나무로, 보호수로 지정되어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굵은 줄기와 사방으로 펼쳐진 가지를 바라보고 있으면 나무가 살아온 시간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이 모과나무가 더욱 특별한 것은 심향사의 역사와 함께 이야기를 품고 있기 때문이다. 심향사의 미륵전은 1976년 장마로 무너졌다가 이듬해 복원되었다.
이 과정에서 1789년에 작성된 상량문이 발견되었는데, 당시 사찰의 이름이 ‘신왕사’와 ‘심향사’로 함께 나타나고, 법당은 ‘용화전’으로 불렸음을 알 수 있다. 오래된 기록과 한 그루의 나무가 한자리에서 만나는 것이다. 봄이면 모과꽃이 피고, 계절이 깊어지면 열매가 익는다. 화려하게 자신을 드러내기보다 오랜 세월 한자리에서 묵묵히 자리를 지켜온 모습이 오히려 산사의 풍경과 잘 어울린다.
원효대사의 창건설에서 고려 현종의 몽진까지
심향사의 역사는 통일신라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심향사가 통일신라시대 승려 원효가 창건한 사찰로 전해지며, 처음 이름은 미륵원이었다고 설명한다. 고려시대에는 신왕사로 불렸으며, 18세기 후반부터 심향사라는 이름이 사용되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심향사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고려 제8대 왕 현종이다. 1010년, 거란이 고려를 침략하자 현종은 개경을 떠나 남쪽으로 피난길에 올랐다. ‘고려사’ 연표에는 “거란 황제가 침입하니 왕이 나주로 피난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또 ‘고려사’ ‘지리지’의 나주목 연혁에는 현종이 거란군을 피해 남쪽으로 내려와 나주에 이르러 열흘 동안 머물렀다고 보다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다. 천년 전, 나라의 운명이 풍전등화와 같던 시기.
왕의 피난길이 나주까지 이어졌고, 나주는 고려 왕실의 위기를 함께 견뎌낸 역사적인 공간이 되었다. 심향사 역시 현종의 나주 몽진과 관련된 사찰로 전해진다. 다만 현종이 심향사에서 직접 기도를 올렸다는 부분은 정사에 명확하게 기록된 사실이라기보다 후대에 전승되어 온 이야기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 한국관광공사 역시 이러한 전승을 소개하면서 현종의 나주 몽진과 심향사의 인연을 설명하고 있다.
천년의 기도, 그리고 사람들의 마음 심향사는 오랜 세월 동안 사람들의 기도가 머물렀던 공간이기도 하다. 미륵을 모신 도량으로 이어져 온 이곳에는 나라의 평안과 가족의 안녕을 기원하는 마음이 켜켜이 쌓여 있다. 누군가는 가족을 위해 기도하고, 누군가는 자녀의 앞날을 위해 간절한 마음을 올렸을 것이다.
그 모습을 말없이 지켜본 것이 바로 사찰의 오래된 나무들이다. 모과나무의 굵은 줄기를 바라보면 문득 궁금해진다. 이 나무는 지난 200년 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소원을 들었을까. 기쁨도, 슬픔도, 기다림도, 간절한 바람도…. 나무는 아무 말이 없지만 그 모든 시간을 품은 채 오늘도 같은 자리에서 방문객을 맞이한다.
문화유산이 살아 있는 산사
심향사에서는 오래된 전각과 나무뿐 아니라 소중한 불교문화유산도 만날 수 있다. 미륵전 앞에는 고려시대 석탑으로 추정되는 삼층석탑이 자리하고 있으며, 경내에는 나주 심향사 건칠아미타여래좌상과 석조여래좌상 등 귀중한 문화유산이 전해진다. 특히 건칠아미타여래좌상은 2008년 보물로 지정된 문화유산이다. 국가유산포털에 따르면 조선시대 불교조각으로서 심향사에 봉안되어 있다.
또한 심향사에서 눈여겨볼 것은 지금은 사찰을 떠나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되고 있는 문화유산들이다. 나주 북망문 밖 삼층석탑과 나주 서성문 안 석등은 원래 심향사에 있었던 것으로 전해지며, 현재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만나볼 수 있다. 이처럼 심향사는 한 사찰의 역사만 간직한 곳이 아니라, 나주의 불교문화와 지역사를 함께 살펴볼 수 있는 문화유산의 공간이다.
계절마다 새로운 얼굴을 보여주는 심향사
심향사의 매력은 어느 한 계절에만 머물지 않는다. 봄에는 꽃이 피어나고, 여름에는 짙은 녹음이 산사를 감싸며, 가을에는 모과 열매가 익어간다. 그리고 겨울에는 잎을 내려놓은 고목과 고요한 전각이 한층 깊은 산사의 정취를 만들어낸다. 특히 모과나무가 있는 미륵전 앞에 잠시 서보자. 화려한 관광지가 아니어서 더욱 좋다. 새소리와 바람소리에 귀 기울이고, 오래된 나무의 줄기를 바라보고, 돌탑의 세월을 헤아리다 보면 여행자의 마음도 어느새 차분해진다.
나무 한 그루에서 시작되는 역사 여행 심향사를 제대로 만나는 방법은 서두르지 않는 것이다. 미륵전과 석탑을 둘러보고, 오래된 문화유산 앞에서 잠시 발걸음을 멈춰보자. 그리고 마지막에는 모과나무 아래에 서보자. 나무 한 그루를 통해 200년의 시간을 만나고, 사찰의 역사를 따라 천년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며, ‘고려사’에 기록된 현종의 나주 피난길까지 떠올려보는 것. 그것이 심향사가 선물하는 특별한 여행이다.
천년의 역사와 오래된 나무가 만나는 곳. 왕의 피난길과 민초들의 기도가 스쳐간 곳. 그리고 오늘도 조용히 여행자를 맞이하는 곳. 나주 금성산 자락, 심향사에서 시간의 향기를 만나보자. 한 걸음 천천히 걷고, 한 번 더 바라보고, 오래된 나무 아래 잠시 마음을 내려놓으면, 천년 고찰 심향사의 이야기가 어느새 여행자의 마음속에 오래 머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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