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시 영산동 노인복지관 주차장에 국도를 등에 업고 8개의 다른 비석들과 초라하게 서있는 140년 역사의 주인공 나주목사 이정현의 영세불망비. 사진=이진문
2026 나주-프랑스 클레르몽페랑 청소년국제교류 여름캠프 대상자 선발을 위해 안내에 따라 빛가람복합문화체육센터 면접 심사장에 들어서는 1차선발 통과자 중 한 사람. 사진=이진문
2026 나주 프랑스 클레르몽페랑 청소년 국제교류 여름캠프 2차 선발 면접을 위헤 1차통과자들이 대기실에서 안내요원의 지시에 따르고 있다. 사진=이진문

나주시는 지난 13일 나주-프랑스 클레르몽페랑 청소년국제교류 여름캠프 대상자 선발을 위한 면접 심사를 열었다. 이번 면접은 1차 선발시험을 통과한 20명을 대상으로 빛가람동 복합문화체육지원센터에서 치러졌다. 나주시-클레르몽페랑시 우호교류 협약의 일환이다.

엠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지난 4월 한국을 국빈 방문한 적은 있으나, 나주 학생과 프랑스 학생이 교류를 갖는다는 사실에 대해, 많은 나주시민이 다소 의아한 반응을 갖기도 한다. 하지만, 나주와 프랑스의 교류는 우리가 생경하게 느끼는 것과는 달리 14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음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영산동에 있는 나주시노인복지관 주차장에는 국도변 쪽에 크고 작은 9개의 비석이 도로변을 등지고 서 있다. 주차장에 주차된 차들이 엉덩이를 비석 쪽으로 들이밀고 있기에, 가스를 마시며 불편한 두통을 호소할 법하다.

그들은 ‘행 목사 이지연 영세불망비’, ‘영장 박항래 청덕선정비’, ‘영장 겸 부상반수 김희순 영세불망비’, ‘명례궁 세감사과 김윤창 불망비’, ‘통정대부 행 군부참서관 겸 삼면 사검관 김공 영세불망비’, ‘목사 이회연 선정비’, ‘목사 김기현 영세불망비’, ‘어사 조귀하 불망비’, ‘남평현감 겸 나주목사 이정현 불망비’ 등이다.

그 가운데 이지연은 1830년 10월 1일부터 1831년 1월까지 재임했다. 그러니까, 4개월을 근무했다. 그런데, 단아하고 조촐하다. 관등에 비해 화려함이란 없다. 목사 김기현도 1853년 12월 27일부터 1855년 10월까지 재임, 1년10개월 근무했다. 역시 영세불망비다.

얼마나 덕행을 베풀어 민중들이 은혜로웠으면, 돌에다 이름을 새겨 영원히 잊지 않겠다고 했단 말인가. 목사라는 체면이 있으니 그냥 체면치레로 세워준 게 아니라면, 당연히 금성관 큰 비석군에 들어가 한쪽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야 할 텐데 그러지를 못하고, 거기 서서 매연을 뒤집어쓰고 있게 된 것은 어떤 연유에서인가. 자못 기이한 일이다.

나주시 영산동 노인복지관 주차장에 국도를 등에 업고 늘어서있는 8개의 비석들에 대한 게시 표지판. 사진=이진문

불망비 중에서, 오늘의 주인공 나주목사 이정현에 얽힌 드라마의 서막을 열어보자. 1851년(철종2년) 신안군 비금도 인근 해역에서 프랑스 고래잡이배 나르발호가 표류됐다. 굶주림과 약탈의 위험 속에서, 나르발호의 선원들을 따뜻하게 보살펴준 이가 바로 나주목사 이정현이었다.

자국민을 무사히 구해준 조선의 온정에 감동한 프랑스는 이 사건을 고등학교 역사 교과서에 수록하며 귀감으로 삼았다. 신안의 섬들이 당시는 나주에 속했었다.

그 선원들을 구출하러 온 상하이주재 프랑스 영사 몽티니는 감사하다고 만찬을 열었고, 그 자리에서 막걸리 ‘옹기주병’과 프랑스 대통령이 보낸 ‘샴페인 세브르 자기 ’백자 채색 살라미나병 (높이 62cm, 입지름 53cm)’을 기념으로 주고받았다.

프랑스에서 ‘한국유물1호’인 ‘옹기주병’이 175년만에 한국에 돌아와 지난 6월3일일부터 8월2일까지 국립고궁박물관에 전시되며, 학계와 대중의 큰 화제를 모으고 있기도 하다. 구한말, 고종과 프랑스 대통령의 국제우호교류의 중심에 나주목사 이정현이 있었던 것이다.

175년만에 한국에 돌아와 8월 2일까지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전시되는 프랑스 한국유물1호 옹기주병. 사진=국립고궁박물관

없는 것도 만들어 홍보로 쓰여지기 일쑤인 세상에, 있는 사실을 드러내어 크게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 표본이, 바로 나주목사 이정현의 초라한 영산동 주차장 비석이다.

이번 프랑스 클레르몽페랑시와의 청소년 국제교류는 결코 하늘에서 뚝 떨어진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다. 140년 전 나주목사 이정현이 보여준 안목과 인류애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는 필연적인 역사적 연속성이다.

나주시가 이 귀중한 외교적 자산을 단순히 ‘주차장 비석’으로 묵혀둘 것이 아니라, 청소년들에게는 역사적 자긍심을 심어주고, 대외적으로는 프랑스와의 문화적 연결고리를 공고히 하는 ‘역사 마케팅’의 핵심 브랜드로 적극 예우하고 활용해야 할 시점이다. 주차장 구석에 방치된 나주목사 이정현의 비석부터 그 자리에서 구해내는 것이 그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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