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산강의 뱃길을 통해 세계와 소통하며 국제적 교역 네트워크를 구축한 고대 마한의 해양 왕국중국, 동남아시아, 멀리 서아시아의 정취까지 품은 반남면 고분군의 눈부신 외래 유물들자체적인 농업·철기 생산력을 바탕으로 당대 동아시아 해상 무역의 중심지로 도약한 글로벌 리더십
비옥한 나주평야를 적시며 유유히 흐르는 영산강의 물줄기는 예로부터 한반도 남부의 닫힌 내륙에 머물지 않고, 거친 바다를 향해 문을 여는 거대한 문명의 통로였다. 앞서 살펴본 덩이쇠(철정)가 국내외 교역을 지탱한 강력한 경제적 화폐였다면, 이번 제26부에서 집중 조명할 ‘외래 유물들과 글로벌 해양 무역’은 당시 영산강 유역의 마한 세력이 얼마나 개방적이고 국제적인 안목을 지닌 해양 세력이었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찬란한 증거다.
고대 사회에서 바닷길은 단순히 물건을 실어 나르는 이동 수단을 넘어, 서로 다른 문화와 문명이 교류하는 최첨단의 무대였다. 영산강 유역의 중심지인 나주 반남면 고분군을 비롯한 대형 무덤들에서는 당시 토속적인 유물뿐만 아니라, 한반도 내부에서는 자체적으로 만들기 힘든 이국적인 보물들이 다량으로 출토되어 학계의 이목을 집중시켜 왔다.
바다를 건너온 영롱한 빛, 유리구슬과 외래 장신구의 비밀
나주 반남면의 고분 속에서 출토되는 수많은 유리구슬과 각종 옥 장신구들은 당시 이 지역이 결코 내륙에 갇힌 폐쇄적인 소집단이 아니었음을 증명하는 가장 명백한 물증이다. 정교하게 가공된 푸른색, 붉은색, 투명한 유리구슬들은 당시 한반도 남부의 기술을 넘어, 중국, 동남아시아, 심지어 서아시아와의 해양 교역 네트워크를 통해 유입된 최고급 수입 명품들이었다.
이국적인 유리구슬과 화려한 장신구들은 영산강의 뱃길을 틀어쥐고 동아시아 해상 무역의 주도권을 호령했던 마한의 지배층이 누렸던 경제적 부와 국제적 외교 지위가 얼마나 막강했는지를 고스란히 투영하고 있다. 그들은 바다를 두려워하기보다 적극적인 항해술과 교역망의 파트너로 활용하며, 세계의 보물들을 품에 안았던 것이다.
해양 왕국의 개방성과 다채로운 문화 접촉의 현장
이처럼 머나먼 이국의 문물이 영산강 유역으로 물밀듯 들어올 수 있었다는 것은, 마한인들이 뛰어난 항해술과 조선술뿐만 아니라 대외 교역을 조율할 수 있는 강력한 정치·외교적 역량을 갖추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중국과의 정교한 외교 및 교역은 물론, 남방 해상 세력과의 접촉을 통해 새로운 기술과 사상을 흡수하며 마한 사회를 한 단계 더 진화시켰다.
비옥한 대지에서 거둬들인 풍부한 식량 자원과 강력한 철기 문화를 바탕으로, 마한의 상인과 항해사들은 바다를 무대로 활약했다. 외국의 보물들은 단순한 사치품이 아니라, 영산강 유역이 당대 동아시아 국제 무역의 당당한 한 축을 담당했던 ‘글로벌 해양 왕국’이었음을 입증하는 살아있는 역사적 기록이다.
[기자 수첩]
국립나주박물관의 쇼케이스 너머로 은은한 빛을 발하는 영롱한 유리구슬들을 마주하면, 수천 년 전 거친 바다를 가르며 영산강의 포구로 들어섰을 이국적이고 활기찬 상인들의 행렬이 눈앞에 선명하게 그려진다. 바다를 경계가 아닌 길로 삼아 세계와 소통하며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던 마한 선조들의 개방적이고 진취적인 기개는, 오늘날 세계를 향해 뻗어가는 우리 고향 나주의 당당한 DNA 속에 고스란히 이어지고 있다.
이어질 제27부 [마한의 축제, 씨앗을 뿌리고 거둘 때 온 마을이 춤추던 소통의 연대기]에서는 풍요를 기원하며 대지 위에서 펼쳐졌던 마한인들의 공동체적 삶과 축제의 일상을 깊이 있게 조명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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