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망문 전경 사진=나주시
동점문. 사진=나주시
서성문. 사진=나주시
남고문. 사진=나주시

나주를 걷다 보면 문득 마주치게 되는 네 개의 문이 있다. 동점문·서성문(영금문)·남고문·북망문이다. 낯선 이름과 예스러운 생김새 탓에 그저 옛 건축물로 지나치기 쉽지만, 이 문들은 나주읍성의 관문이었을 뿐 아니라 오늘의 나주가 어디서 왔고 어디로 향하는지를 말해주는 살아 있는 증거다. 취재차 사대문을 오가며 든 생각은 이 문들이 과거의 유산이 아니라 지금 나주가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이라는 것이었다.

나주읍성은 고려시대 판축토성으로 처음 쌓였다고 전해지며, 조선 태종 4년(1404) 석성으로 개축된 이후 세조 3년(1457)의 확장과 임진왜란 이후의 보수를 거치며 지금의 골격을 갖췄다. 문헌마다 성의 규모를 다르게 기록하고 있는 것을 보면, 이 성이 한 시대에 완성된 것이 아니라 조선시대 내내 여러 차례에 걸쳐 고쳐 짓고 다시 쌓으며 이어져 왔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관문마다 이름을 새길 때, 옛사람들은 단순한 방위 표시를 넘어 뜻을 담았다. 동점문은 나주천이 동쪽으로 흘러 영산강을 만나 바다로 나아간다는 의미를 담았고, 서성문은 나주를 두루 비춘다는 뜻의 영금문이라는 편액을 함께 지녔다. 북망문은 임금이 계신 북쪽을 바라본다는 뜻이고, 남고문은 남문을 지나며 그 북쪽을 돌아본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충(忠)과 예(禮)를 문 이름에 새겨 넣은 마음이 오늘까지 전해지는 셈이다.

하지만 이 문들은 한때 완전히 사라졌던 적이 있다. 1910년대 일제가 나주읍성의 사대문과 성벽을 빠르게 훼철하면서 그 자리는 식민통치 건물지와 도로망으로 바뀌었고, 해방 이후 도시화가 진행되며 훼손은 더욱 심해졌다. 한동안 사대문은 나주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만 존재하는 이름이었다. 그랬던 문들이 다시 제 모습을 찾은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나주시는 역사문화도시 조성의 일환으로 복원 사업에 나서 1993년 남고문을 시작으로 2006년 동점문, 2011년 서성문, 2018년 북망문까지 순차적으로 복원을 마쳤다. 문 하나하나가 다시 세워질 때마다, 나주는 잃어버렸던 역사의 한 페이지를 되찾은 셈이었다.

취재 과정에서 인상 깊었던 것은 지금 사대문이 단순한 유적을 넘어 시민의 일상과 관광객의 발걸음이 함께 머무는 공간으로 살아 움직이고 있다는 점이었다. 금성관과 목사내아, 나주향교를 잇는 도보권 안에 자리해 걸어서 둘러볼 수 있고, 인력거 투어를 통해 문화 해설과 함께 이야기를 들을 수도 있다. 동점문 밖에는 국가지정문화유산인 나주 동점문 밖 석당간이 서 있어, 문 하나가 품고 있는 역사의 켜가 얼마나 두꺼운지 보여준다. 이렇게 복원된 문들이 관광 자원을 넘어 시민 정체성의 거점으로 자리 잡는 모습을 보면서, 사대문이 나주의 미래 비전과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주는 예로부터 의(義)를 지킨 고장, ‘의향나주’로 불려왔다. 후삼국시대 견훤과 왕건의 각축, 삼별초의 항쟁, 동학농민군의 봉기, 호남 최초의 항일의병 봉기에 이르기까지 굵직한 역사의 순간마다 그 중심에 있었던 고장이다. 사대문은 그 오랜 역사 위에 조선시대 들어 다시 세워진 관문으로, 지금도 그 자리를 지키며 나주가 걸어온 길을 묵묵히 증언한다. 백 년의 어둠을 딛고 다시 세워진 문들을 취재하며 든 확신은, 이 문들이 앞으로도 나주라는 도시가 무엇을 지키고 어디로 나아갈지를 비추는 이정표로 남으리라는 것이다. 사대문 앞에 서서 그 이름의 뜻을 한 번쯤 헤아려 보길 권하고 싶다. 동점문에서는 열려 있던 나주의 기상을, 남고문과 북망문에서는 옛 관리들의 곧은 마음을, 서성문에서는 나주를 두루 비추었다는 그 자부심을 느껴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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