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 향교 뜰 전경. 사진=한국관광공사

전라남도 나주시 향교길에 자리한 나주향교는 1407년(태종 7년) 창건된 호남 지역의 대표적인 향교로, 조선 시대 지방 교육과 유교 문화 전승의 중심지 역할을 담당해 왔다. 규모가 웅장하고 역사적 가치가 뛰어나 우리나라 3대 향교 중 하나로 꼽히며, 조선 시대 교육 시설 가운데 성균관 다음으로 규모가 크다는 평가를 받는다.

나주향교는 일반 향교와 다른 독특한 건축 양식을 지니고 있다. 1701년(숙종 27년)에 창건된 계성사가 자리하고 있어 대성전과 명륜당의 위치가 바뀌어 배치된 것이 특징이다. 공자의 아버지를 모신 계성사가 있는 향교는 전국적으로도 드물며, 호남에서는 나주 향교가 대표적인 사례로 손꼽힌다. 또한 향교의 중심 건물인 대성전은 보물 제394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웅장한 규모와 뛰어난 건축 양식으로 조선 후기 향교 건축의 우수성을 보여주고 있다.

나주향교는 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뿐 아니라 의병사적지로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1895년 명성황후 시해와 단발령 강행 이후 전국에서 항일 의병운동이 일어나자, 장성의 유학자 기우만은 왜적을 물리치고 국권을 수호하기 위한 격문을 전라도 각지에 발송하였다.

1896년 기우만의 격문이 나주에 전달되자 나주의 유림과 향리들은 나주향교 동재에 모여 향회를 열고 나라의 위기를 극복할 방안을 논의했다. 이어 전 주서였던 이학상을 의병장으로 추대하고 박화실, 박근욱, 김창균 등과 함께 나주 의병을 결성하였다. 이는 을미의병기 호남 지역 항일 의병 운동의 중요한 출발점이 되었다.

당시 장성 향교를 근거지로 의병을 일으킨 기우만은 장성 의병을 이끌고 나주향교로 이동해 나주 의병과 연합하였다. 또한 창평의 고광순을 비롯한 여러 지역 의병들이 합류하면서 의병 세력은 더욱 확대되었다. 연합 의병 부대는 광주 향교를 거점으로 전라도 각 지역에 통문을 발송하며 의병 참여를 독려하고 항일 투쟁을 준비하였다.

그러나 관군의 진압이 강화되고 조정에서 파견한 선유사 신병선이 왕명을 내세워 의병 해산을 권고하면서 의병 활동은 중단되었다. 비록 짧은 기간의 활동이었지만, 나주향교에서 시작된 나주 의병의 봉기는 나라를 지키고자 했던 선조들의 애정신과 의로운 뜻을 보여주는 소중한 역사로 남아 있다.

현재 나주향교는 사적 제483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교육과 제사의 전통을 간직한 문화유산이자 호남 의병정신의 산실로서 그 역사적 가치를 이어가고 있다. 또한 인근에는 조선시대 객사인 금성관이 위치해 있어 나주 원도심의 역사문화 탐방 코스로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나주향교는 단순한 옛 교육기관을 넘어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지역의 선비와 백성들이 뜻을 모아 국권 수호에 나섰던 의병정신의 상징적인 공간이다. 오늘날에도 이곳은 후손들에게 애국과 정의, 공동체 정신의 가치를 전하는 살아있는 역사교육의 현장으로 자리하고 있다.

[나주향교 이용안내]
• 주소 : 전라남도 나주시 향교길 38
• 이용시간 : 오전 9시 ~ 오후 6시
• 휴무일 : 연중무휴
• 입장료 : 무료
• 주차시설 : 가능
• 문의 : 061-334-2369
• 홈페이지 : 나주시 문화관광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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