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시 금성관 경내에는 보물로 지정된 웅장한 객사 건물만 서 있는 것이 아니다. 그 한편에 조용히 자리를 지키는 돌비석 하나가 있으니, 바로 금성토평비(錦城討平碑)다. 관광객들은 대개 팔작지붕의 위엄 있는 금성관 건물에 시선을 빼앗기지만, 이 비석 앞에 잠시 발걸음을 멈추면 조선 말기의 격랑이 파도처럼 밀려온다.
금성토평비는 동학농민혁명 당시 나주성을 공격한 동학농민군에 맞선 나주 수성군의 공을 기리기 위해 세운 것으로, 1895년 나주지역의 유림들이 주축이 되어 건립되었다. ‘토평(討平)’이라는 두 글자가 모든 것을 말해준다. 토벌하여 평정하였다는 뜻이다. 세운 이들의 눈에 동학농민군은 평정해야 할 반란군이었고, 나주 수성군은 나라를 지킨 충신들이었다. 비문의 내용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뉘어, 농민운동이 일어나 나주에까지 동학농민군이 쳐들어오게 된 과정, 당시 나주목사 민종렬(閔種烈)이 여러 장령들을 지휘하여 치밀한 방어 계획을 세운 것, 그리고 나주에서 관군과 동학농민군 간 접전이 벌어지는 과정을 서술하고 있다. 비문은 나주의 대표적인 유림인 송사 기우만(奇宇萬)이 지었다.
1894년 동학농민혁명이 전라도 일대를 휩쓸었을 때, 전주화약 이후 농민군은 전라도 각지에 집강소를 설치하며 폐정 개혁에 나섰다. 그러나 나주, 운봉, 순창의 경우는 집강소 설치를 거부하는 향리와 지방 유생 및 지방 포군으로 구성된 수성군과 동학농민군 사이에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는 등 집강소 설치와 폐정 개혁 활동에 어려움을 겪었다. 나주목사 민종렬은 동학농민군의 거듭된 압박에도 굴하지 않고 성문을 걸어 잠그며 끝까지 버텼다. 금성토평비는 바로 그 완강한 저항의 기록이다.
이 비는 본래 나주목 동헌 정문인 정수루(正綏樓) 앞에 있었으나, 1930년 금성관 앞으로 옮겨졌고, 1976년 금성관 내 현재 위치로 다시 이전되었다. 비석 하나가 세 번이나 자리를 옮겼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역사의 파란을 반영한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관아의 공간 구조가 변형되었고, 해방 이후 복원과 정비 과정에서 또다시 제자리를 잃었다. 현재의 위치는 역사적 원형과 다르지만, 금성관이라는 나주 역사의 중심 공간 안에 터를 잡음으로써 오히려 더 많은 이들의 눈에 띄게 되었다.
금성토평비가 자리 잡은 금성관은 그 자체로도 나주 역사의 압축판이다. 나주목의 객사 건물로 매월 1일과 15일에 국왕에 대한 예를 올리고, 외국 사신이나 정부 고관의 행차가 있을 때 연회를 열었던 곳으로, 조선 성종 연간에 나주목사 이유인에 의해 건립되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 300여 명을 모은 나주 출신 의병장 김천일(1537~1593)은 바로 이 금성관에서 피로 맹세한 후 북상길에 올랐으며, 그는 호남 최초의 의병장으로 기록된다. 또한 일본인이 명성황후를 시해했을 때에는 이곳에서 명성황후의 관을 모셔 항일정신을 높이기도 하였다. 조선 왕조의 충성 공간이었던 객사가, 의병 출정의 무대가 되고, 명성황후의 관을 봉안한 장소가 되고, 동학 진압을 기념하는 비석을 품게 되기까지 금성관이 목격한 역사는 한국 근대사의 굵직한 장면들과 고스란히 겹친다.
금성토평비를 두고 오늘날 역사학계의 시선은 복잡하다. 동학농민혁명은 현재 대한민국 국가기념일로 지정될 만큼 재평가가 이루어졌지만, 금성토평비는 그 농민군을 ‘토평’의 대상으로 기록하고 있다. 승자가 세운 비석은 패자의 이야기를 담지 않는다. 굶주림과 억압에 맞서 봉기한 수만 농민들의 절박함은 비문 어디에도 새겨지지 않았다. 그러나 이 비석을 없애거나 외면한다고 해서 역사가 지워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이 비석은 그대로 서 있음으로써, 역사를 어느 자리에서 읽느냐에 따라 얼마나 다른 풍경이 펼쳐지는지를 생생하게 가르쳐준다. 같은 사건을 두고 한쪽은 ‘토평’이라 새기고, 다른 쪽은 ‘혁명’이라 부른다. 그 간극이야말로 우리가 역사 앞에서 계속 물음을 던져야 하는 이유다.
금성관 경내에서 금성토평비를 마주하는 일은 단순한 유물 감상이 아니다. 그것은 승자와 패자, 질서와 저항, 기억과 망각 사이 어딘가에 조용히 서보는 경험이다. 돌은 말이 없지만, 그 침묵 속에 130년의 역사가 온전히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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