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주 읍성 안쪽, 나지막한 담장 너머로 천년의 세월을 품은 집 한 채가 고즈넉하게 자리 잡고 있다. 바로 조선시대 나주목 수령이 살았던 ‘목사내아(牧使內衙)’다. 벼락을 맞고도 다시 연둣빛 잎을 틔워낸 오백 년 팽나무가 마당을 지키는 이곳에 서면, 시간이 잠시 멈춘 듯한 착각에 빠지곤 한다.
흔히 문화재라고 하면 유리창 너머로 감상하는 박제된 유산으로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목사내아는 조금 다르다. 고려 성종 때부터 300명이 넘는 목사들이 거쳐 가며 고을 사람들의 희로애락을 귀담아듣던, 나주에서 가장 뜨거운 삶의 현장이었다. 한양을 닮아 ‘작은 서울’이라 불렸던 나주의 자부심이 이곳의 기둥과 기와 한 장 한 장에 깃들어 있다. 수령과 백성이 이 공간 안에서 서로를 마주하며 신뢰를 쌓아온 그 오랜 정신은, 오늘날까지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
그 정신이 살아있음을 보여준 잊을 수 없는 장면 하나가 있다. 언젠가 이 마당에서 나주사랑봉사회 회원들이 팔을 걷어붙이고 음식을 만들었다. 나주를 위해 묵묵히 일하는 공무원들과 시민들에게 따뜻한 점심 한 끼를 대접하고 싶다는 마음 하나였다. 특별한 행사도, 거창한 구호도 없었다. 그저 수고하는 사람들 곁에 정성껏 차린 밥 한 그릇을 내미는 일이었다. 그 소박한 나눔이 한옥 숙박 체험과 전통문화 행사로 이어졌고, 오늘날 목사내아가 시민의 품 안에 살아있는 문화공간으로 자리 잡게 된 진정한 출발점이 되었다. 과거 목사와 백성이 이 공간을 사이에 두고 서로의 삶을 마주했듯, 시민과 공무원이 밥 한 그릇을 통해 경계를 허물었던 그 풍경은 목사내아가 본래 품었던 정신을 오늘의 언어로 다시 쓴 것이었다.
이제 우리는 이 소중한 공간에 새로운 숨결을 불어넣으려 한다. 나주 시민들이 꿈꾸는 목사내아의 미래는 거창한 전시관이 아니다. 팽나무 그늘 아래 이웃과 가벼운 안부를 나누고, 아이들이 마음껏 뛰놀고, 세대와 세대가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마을의 큰 거실이다. 나주 배와 홍어, 나주곰탕의 맛을 함께 나누는 마당 장터가 열리고, 지역 농가와 소상공인, 문화예술인이 손을 맞잡는 공간. 행정이 기획하고 시민이 따르는 방식이 아니라, 시민과 행정이 함께 만들어가는 방식으로 운영될 때 이 공간은 비로소 진정한 공동체의 것이 된다.
문화재는 사람이 온기를 불어넣을 때 비로소 진정한 가치를 갖는다. 나주사랑봉사회의 국자 하나에서 시작된 그 마음이 쌓이고 이어지듯, 한 사람 한 사람의 참여가 목사내아의 내일을 만들어간다. 벼락 맞은 팽나무가 해마다 새잎을 틔우듯, 이 오래된 집도 사람들의 온기 속에서 해마다 새로운 이야기를 써 내려갈 것이다. 목사내아의 대문이 활짝 열릴 때, 나주의 천년 역사는 비로소 시민의 일상이 되고 미래의 희망이 된다. 그 마당에서, 다시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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