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산포홍어의거리에 세워진 홍어 조형물이 지역의 오랜 식문화를 상징하고 있다. 사진=안행자
영산강 수운의 중심지로 번성했던 이곳은 600년 세월을 품은채 지금도 조용히 살아 숨쉰다. 홍어 냄새 가득한 골목,퇴색한 간판들 사이로 과거와 현재가 나란히 걷는 길. 사진=안행자
홍어 거리의 홍보 구조물. 사진=안행자
전국으로 배달될 홍어가 크기별로 진열돼 있다. 사진=안행자
전라도 잔칫상에 빠지지 않는 대표음식 삼합(삭힌홍어+돼지수육+묵은지)을 한번에 싸먹는것이 핵심이다. 사진=홍어1번지

코를 자극하는 알싸한 향, 혀 위에서 피어오르는 삼합의 풍미, 그리고 600년이라는 세월의 무게. 전라남도 나주시 영산포 홍어거리는 단순한 먹거리 골목이 아니다. 강이 만들고 사람이 이어온 발효 문화의 현장이자, 한국 식문화사의 살아 있는 유산이다.

본지는 이 골목의 600년 역사와 그 안에 깃든 사람들의 이야기를 현장에서 기록했다. 냉장 기술이 없던 시절, 전남 신안 흑산도 앞바다에서 잡힌 홍어는 황포돛배에 실려 영산강 물길을 닷새에서 열흘간 거슬러 올라왔다. 한여름의 염열과 강바람을 맞으며 선창 위에 실린 홍어는 목적지인 영산포에 닿았을 때, 이미 예상치 못한 향미를 머금고 있었다. 처음에는 실패처럼 보였던 그 우연이 명품이 되었다.

영산포 선창의 상인들은 알싸하고 톡 쏘는 기묘한 향미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했고, 이후 의도적인 숙성이 시작되었다. 그렇게 영산포는 홍어의 수도로 자리매김했다. 영산포 선창가 원로 상인의 증언에 의하면 “흑산도에서 잡은 홍어를 배에 싣고 영산강을 거슬려 영산포까지 오는데 일주일에서 열흘이 걸렸다. 그 긴 뱃길 위에서 홍어가 자연스럽게 숙성됐고, 먹어보니 오히려 더 맛있어졌다.

그때부터 사람들이 일부러 숙성시켜 먹기 시작했다” 숙성은 단순히 시간을 기다리는 행위가 아니다. 계절과 온도, 습도를 읽는 섬세한 감각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수십 년 경험에서 우러난 현지의 원칙은 명확하다.계절별로 숙성 기간이 다르다. 봄에는 약 20일, 여름에는 10일, 겨울에는 30일. 기온이 낮을수록 숙성은 더디게 진행되지만, 그만큼 깊은 풍미가 배어든다.오늘날에는 가정용 냉장고를 활용해 누구나 숙성을 시도할 수 있지만, 온도와 시간을 읽는 감각만큼은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

현대 기술은 도구를 바꿨을 뿐, 장인의 눈은 여전히 살아 있다. 영산포 홍어 문화의 정수는 단연 홍어삼합에 있다. 충분히 숙성된 홍어 위에 삶은 돼지고기와 묵은 김치를 겹쳐 한 입에 넣는 순간, 세 재료는 각자의 맛을 증폭시키며 전혀 다른 차원의 풍미를 완성한다. 홍어의 암모니아 향이 돼지고기의 기름기를 잡아주고, 묵은 김치의 산미가 전체적인 균형을 이룬다. 처음 맛보는 이에게는 낯설고 강렬한 경험이다. 그러나 한 번 익숙해지면 결코 잊히지 않는다. 전국의 미식가들이 지금도 이 골목을 찾는 이유다.

삼합의 형식 또한 시대와 함께 변화하고 있다. 묵은지와 돼지고기만을 고집하던 전통에서 벗어나, 막 담근 김치나 닭고기를 곁들이는 방식도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형식보다 맛과 즐거움이 우선”이라는 현지 상인들의 철학이 반영된 결과다. 영산포에서 홍어는 단순한 먹거리가 아니었다. 혼례·회갑·초상 등 집안의 대소사에 반드시 올랐으며, 홍어가 빠진 잔칫상은 완성으로 인정받지 못할 만큼 상징적 지위를 지녔다. 600년의 세월이 한 점의 음식 안에 고스란히 담겨 있는 셈이다.

오늘날 홍어는 일상의 자리에도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생일·돌잔치·동창회·제사 어느 자리에도 어울리며, 최근에는 경조사에 꽃 대신 숙성 홍어를 택배로 보내는 문화까지 생겨났다. 유통기한이 길고 활용도가 넓다는 점이 현대 소비 문화와 맞닿은 덕분이다. 홍어 한 마리에서 버릴 것은 없다. 그냥 썰어 먹는 것은 물론, 무침·전·튀김·라면에까지 폭넓게 활용된다. 껍질은 바삭하게 튀겨 안주로, 뼈는 곱게 갈아 환으로 만들어 소화 기능이 약한 이들의 건강식으로도 꾸준히 찾는 이들이 있다.

현재 영산포 선창가 일대에는 홍어 전문점 30여 곳이 성업 중이다. 홍어거리는 맛만의 공간이 아니다. 골목을 걷다 보면 일제강점기의 흔적을 간직한 영산포역사갤러리, 영산강변과 문학이 만나는 ‘타오르는 강’ 문학관, 근대 생활의 숨결이 배어 있는 죽전골목이 차례로 펼쳐진다.

매년 5월에는 영산포 홍어축제가 열린다. 유채꽃이 강변을 물들이고 황포돛배가 영산강을 가르는 풍경 속에서 600년 홍어 역사를 몸으로 체험할 수 있다. 축제 기간에는 사전 예약이 권장된다.영산포 홍어거리는 전라남도 나주시 영산동 선창가 일대에 자리하고 있다. 영산포터미널에서 출발해 홍어거리 선창가, 영산포역사갤러리, 죽전골목으로 이어지는 코스를 따라 걸으면 홍어의 역사와 문화를 한 흐름으로 만날 수 있다. 자세한 내용은 나주시청 관광과(061-339-8584)나 나주시 문화관광(061-339-8300), 또는 나주시 공식 홈페이지(www.naju.go.kr)에서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