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남 나주시 성북동과 교동 일대를 감싸 안은 나주읍성은 본래 둘레 약 3.5km에 달하는 타원형 평지성으로, 천년 고도 나주의 위상을 상징하는 핵심 유적이다. 동서남북 사방에 성문을 두었는데, 그중 서쪽 관문인 서성문(西城門)은 단순한 성곽의 일부를 넘어 나주의 파란만장한 역사와 주민들의 삶이 겹겹이 쌓인 상징적인 공간이다.
서성문은 나주 사람들에게 ‘영금문(映錦門)’이라는 이름으로 더 친숙하다. ‘비단결 같은 나주의 풍경이 비치는 문’이라는 고운 이름을 가졌지만, 역설적으로 이곳은 나주 역사에서 가장 치열했던 격전지 중 하나다. 1894년 동학농민혁명 당시, 전봉준 장군이 이끄는 농민군이 나주읍성을 공략할 때 가장 거센 전투가 벌어졌던 곳이 바로 이 서성문 앞이다. 비단처럼 고운 이름 뒤에는 시대를 바꾸고자 했던 이들의 뜨거운 함성과 고뇌가 서려 있는 셈이다.
2011년 복원된 성문을 마주하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돌들의 생동감이다. 일정한 규격의 장대석이 아니라 현장에서 구한 크고 작은 돌들을 맞물리듯 쌓아 올린 축성 방식은 조선시대 읍성의 실용성을 보여줌과 동시에 당시 지역 장인들의 투박한 손길을 그대로 전한다. 성벽 복원 공사 중 인근 주택가와 텃밭에서 성벽으로 쓰였던 옛 돌들이 다수 발견되기도 했는데, 이는 우리 곁의 소중한 문화유산이 일상 속에서 공존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성벽 산책길을 따라 걷다 보면 역사의 상실과 생명력을 동시에 만날 수 있다. 길 끝자락에는 본래 나주교동의 안녕을 기원하던 오래된 나무가 있었다. 주변경치와 콜라보를 이루던 거목 팽나무 연리지는 2024년 수명을 다해 잘려 나간채 그루터기조차 제대로 남아 있지 않아 ‘상실의 역사’를 증명하는 이정표가 되었다.
그 아쉬움을 달래듯 인근 나주경로당 마당에 자리한 굽은 소나무(와룡송)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과거 나주목의 군사 요충지였던 ‘나주진영’ 터에서 자라난 이 소나무는 모진 풍파를 견디며 마치 용이 누워 있는 듯한 기묘한 형태로 성장했다. 지역 주민들 사이에서는 무병장수와 소원 성취를 기원하는 신성수로 여겨지며, 나주 노인회에서 정성껏 관리하고 있는 나주의 살아있는 유산이다.
산책의 마무리는 서성문 인근의 바느질 카페 ‘바실리에’에서 가질 수 있다. 고즈넉한 읍성의 정취를 즐기며 마시는 따뜻한 쌍화차와 고소한 스콘은 의외의 조화를 이룬다. 전통적인 한방차와 서구적인 디저트가 한 상에 차려진 모습은 오래된 성벽과 현대의 삶이 공존하는 나주의 풍경과 닮아 있다. 특히 향토사에 조예가 깊은 젊은 주인장의 설명을 곁들이면 여행의 깊이는 더욱 깊어진다.
나주읍성 서성문과 나주경로당 일대는 화려한 대형 관광지는 아니다. 대신 ‘영금문’이라는 이름 아래 사라진 당산나무와 굽은 소나무가 공존하며 묵직한 이야기를 건네는 공간이다. 반나절이면 충분히 둘러볼 수 있는 이 코스는 굽은 소나무 한 그루와 성벽 돌 하나가 건네는 역사적 메시지를 만날 수 있는 최적의 장소다.
나주를 찾는 방문객이라면 잠시 시간을 내어 서성문의 성벽을 따라 걸어보길 권한다. 처음에는 보이지 않던 돌 하나, 나무 자리 하나가 건네는 또 다른 이야기를 발견하는 색다른 경험이 될 것이다.
서성문 인근 소형 주차장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으며 별도의 입장료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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