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번 학기 말 겨울방학, 3.1절을 며칠 앞두고 서울에서 온 열 살 손녀의 손을 잡고 ‘나주학생독립기념관’을 찾았다. 평소 취재길에 눈여겨 보아 왔던 이곳을 손녀에게 꼭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예순의 기자가 할머니로서 손녀에게 건네는 이 특별한 역사 수업은 대를 이어 마음을 나누는 뜨거운 교감의 시작이었다.
책 읽기를 좋아하는 손녀는 다행히 우리 역사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고사리손을 맞잡고 도착한 나주 학생 독립기념관 야외 광장, 바닥에 새겨진 선사시대부터 근현대사까지의 연표를 따라 걸으며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 우리 역사의 흐름을 짚어 주었다. 이어지는 전시관 관람에서도 대화는 막힘이 없었다.
호기심 어린 질문을 던지고 귀를 기울이는 손녀를 보며, 예순을 넘긴 기자의 마음속엔 새삼스러운 긍지가 피어올랐다. 60년 세월을 지나온 할머니와 이제 막 역사를 배워 가는 열 살 아이. 이 여정은 단순한 관람을 넘어 세대를 잇는 ‘역사의 대물림’ 현장이었다.
전시실 안에서 손녀의 눈은 더욱 반짝였다. 1929년 10월 30일, 나주역에서 시작된 한·일 학생 간의 충돌이 전국적인 항일운동으로 번졌던 긴박한 순간들이 곳곳에 녹아 있었다. 특히 스마트 기기에 익숙한 손녀는 QR 코드를 활용한 퀴즈 탐방을 통해 97년 전 현장 속으로 빠르게 몰입했다. 한참 미션을 수행하던 아이가 문득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할머니, 일제는 왜 우리나라를 빼앗았어요? 그때 언니, 오빠들은 무섭지 않았을까요?“
아이의 순수한 질문은 묵직한 울림이 되어 돌아왔다. 책장이 아닌 차가운 기차역 플랫폼에서 스스로 역사가 되었던 소년·소녀들의 두려움과 용기가 손녀의 목소리를 통해 현재로 소환된 순간이었다. “나라 잃은 설움만큼 큰 게 없단다.” 어린 시절 부모님께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그 말씀을 손녀에게 전하며, 이것이야말로 살아 있는 역사 교육임을 실감했다.
‘1929년, 나주역 미스터리를 풀어라!’라는 AR 미션은 이번 여정의 백미였다. 기념관 곳곳을 누비며 이주남 열사가 재현된 AR 만세 장면을 확인하고, 소녀상 미션 퀴즈에서 강인한 생명력을 상징하는 ‘강아지풀’의 의미를 척척 맞히는 손녀를 보며 깊은 감동을 느꼈다. 학생들의 뜨거운 함성이 들리는 듯한 나주역의 기억을 간직한 채, 다음 여름 방학에는 그 열기가 고스란히 이어진 학생 독립운동가들의 비밀 회담 장소였던 나주정미소까지 손녀와 함께 걸어볼 계획이다.
모든 퀴즈를 맞힌 손녀는 보상으로 받은 ‘구 나주역 3D 퍼즐’을 품에 안고 아이처럼 기뻐했다. 독립운동의 역사가 지루한 ‘공부’가 아닌 즐거운 ‘성취’로 기억되는 소중한 찰나였다.
하지만 씁쓸함도 남았다. 직접 마주한 평일 오후의 현장은 적막하리만큼 고요했다. 기념관 측의 보도자료 속 북적이는 단체 방문 소식과는 대조적인 풍경이었다. 10년 넘게 이어온 내실 있는 프로그램과 관계자들의 헌신적인 노력이 무색할 정도로 현장의 온기는 아쉬웠다.
수도권에서 나주까지는 세 시간 남짓. 왕복 6시간의 수고로움은 아이의 가슴에 ‘국가’라는 단어를 새기는 가치에 비할 바가 아니다. 문제는 물리적 거리보다 우리 사회의 ‘관심의 거리’다.
교육당국이 수도권 학생들의 체험학습 연계나 범국가적 홍보 지원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는 이유다. 지역 학생들의 단발성 방문에만 기댄다면, 이 뜨거운 역사의 현장은 결국 박제된 공간에 머물 수밖에 없다.
나를 포함한 이 시대를 사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역할도 간과할 수 없다. 우리 같은 장년층이 먼저 역사의 현장에 관심을 두고, 손주들의 손을 잡고 기꺼이 그 길에 동참했으면 한다.
할머니가 들려주는 옛 이야기와 함께 맞추는 역사 퍼즐은 학교 교과서가 줄 수 없는 정서적 울림과 살아 있는 교훈을 선물한다. 우리 세대가 겪은 세월의 무게를 손주들과 공유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줄 수 있는 가장 값진 유산이자 진정한 ‘역사의 대물림’이 아닐까.
기념관을 나와 실제 사건의 현장인 옛 나주역 플랫폼에 섰다. 열 살 아이는 97년 전의 정적을 한참 동안 응시하더니 나직이 읊조렸다. “우리나라가 있다는 게 정말 소중한 거네요.“
귀가하는 차 안에서 들려온 손녀의 한마디는 그 어떤 역사 강의보다 강렬했다. 역사는 기억하는 자의 것이며, 그 기억은 세대와 세대가 손을 맞잡고 대화를 나눌 때 비로소 생명력을 얻는다. 묵직한 울림을 안고 돌아와 손녀와 도란도란 완성한 구 나주역 3D 퍼즐. 그 작은 모형 속에 담긴 커다란 역사가 오늘 밤 아이의 꿈속에서도 환하게 빛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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