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광역시 노인보호전문기관이 주최한 '노인 인식 개선을 위한 사진전'이 광주송정역 지하철 역사에서 전시 중이다. 사진=김동애
닫힌 문은 거절이 아니다. 아무도 두드리지 않아 스스로 잠가 버린 고독의 흔적이다. 그 문 앞에 잠시 멈춰 서는 것, 그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따뜻한 일이다. 사진=김동애
흑백 달력 위에 또박또박 적힌 노인신고 번호 1577-1389. 디지털 세상에 소외된 채로도, 세상과 연결되고 싶은 마음만큼은 누구보다 선명했다. 사진=김동애
노란 유채꽃밭 사이 작은 돌담길. 아들이 내민 손을 어머니가 꼭 쥐었다. 노년은 동정의 대상이 아니라, 사랑이 되돌아오는 자리다. 사진=김동애
일상의 활력과 건강한 오늘을 찾아 넓은 도심 길을 힘차게 자전거로 달린다.사진=김동애

휴일 오후, 한산한 광주의 한 지하철역 역사. 유독 사람들의 발길이 뜸한 후미진 길목을 지나다가 몇 개의 이젤이 덩그러니 놓여 있는 것을 발견했다. 광주광역시 노인보호전문기관이 주최한 ‘노인 인식 개선을 위한 사진전’이었다. 화려한 광고판에 밀려 구석진 곳에 자리 잡은 이 작은 전시장 앞, 나는 무언가에 이끌리듯 발길을 멈췄다.

그리고 한참을, 아주 한참을 말없이 서성였다. 사진 속 설명 한 줄, 노인들의 모습 하나하나가 가슴 깊은 곳을 파고들더니 이내 눈가가 뜨거워졌다. ‘아, 나도 노인인데… 우리 모습이 세상에는 저렇게 비춰지고 있구나.’ 내 나이와 삶이 고스란히 겹쳐 보이면서, 가슴 한구석이 메여 한동안 먹먹한 감정을 추스를 수 없었다.

처음 내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빗장 잠긴 문을 가슴에 품은 채 눈을 감고 계신 어르신의 초상이었다. 요즘 사회적 문제로 깊어지는 노인 학대와 방임의 현실이 오버랩되며 자꾸만 눈길이 머물렀다. 누군가에게 말도 못 한 채 홀로 고통을 삼키며 마음의 문을 닫아 건 노년의 고독이 깊은 주름 사이로 조용히 흘러내리는 듯했다.

그러나 그 먹먹함에 잠겨 시선을 옆으로 돌린 순간, 사진전은 나에게 놀라운 ‘반전’과 위로를 건네기 시작했다. 전시가 품은 진짜 의도는 슬픔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그 문을 열고 나올 ‘당당한 삶’을 보여주는 데 있었기 때문이다.

그 시작점에는 흑백의 달력 앞에 선 어느 어르신의 거친 손이 있었다. 평생 무언가를 붙들고 일해 온 흔적이 고스란히 새겨진 그 손으로, 흑백 달력 위에 또박또박 적어 내려간 노인신고 번호 1577-1389. 스마트폰 터치 몇 번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는 눈부신 세상에서 비록 디지털에 소외된 채일지라도, 세상과 연결되고 싶은 마음만큼은 누구보다 선명했다. 그것은 연약함이 아니라, 포기하지 않고 삶을 붙잡으려는 주체적인 사람의 손이었다.

이어 시선을 옮기자 우리가 미처 보지 못했던, 혹은 외면했던 노년의 찬란한 ‘현재’가 본격적으로 살아 숨 쉬고 있었다. ‘노인과 도시, 그리고 반려견’이라는 작품 속 탁 트인 도시를 배경으로 반려견과 함께 당당하게 서 계신 어르신의 등 뒤에선 세월을 이겨낸 이의 굳건한 자존감이 뿜어져 나왔다.

푸른 나무 그늘 아래서 다정하게 기타를 연주하고 서로의 활기찬 순간을 카메라에 담아내는 <행복한 노년>의 모습, 그리고 ‘오늘도 건강하게’라는 제목처럼 도심의 빌딩 숲을 배경으로 보란 듯이 자전거 페달을 힘차게 밟으며 달리는 역동적인 실루엣 앞에서는 가슴속이 뻥 뚫리는 듯한 쾌감마저 느껴졌다.

그 사진들은 웅변하고 있었다. 노년은 그저 누군가의 돌봄과 보호만을 기다리는 나약한 시간이 아니라고. 청춘의 계절은 지났을지언정, 여전히 일하고, 활동하고, 취미를 즐기며, 뜨겁게 사랑하는 ‘진행형의 삶’이라고 말이다. 자식에게 사랑을 대물림하며 유채꽃밭을 걷는 어머니의 굽은 등과, 평생의 약속을 지키며 모래밭을 나란히 걷는 노부부의 뒷모습은 서글픈 황혼이 아니라 인생이라는 긴 마라톤을 완주해 가는 이들이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경외감 그 자체였다.

이 사진전이 하필이면 지하철역의 가장 ‘후미진 곳’에 전시되어 있었다는 사실은 여전히 씁쓸함을 남긴다. 초고령 사회를 향해 폭주하듯 달려가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활기차게 살아 숨 쉬는 노년의 역동성을 구석진 자리에 가두어 둔 사회적 시선이 못내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시에, 이렇게 구석진 자리에서부터 시작된 작은 이젤 위의 외침이 내 마음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전시장 앞에서 처음에 새어 나왔던 한숨은, 사진들을 모두 보고 돌아설 때쯤엔 우리 삶에 대한 깊은 자부심과 당당함으로 바뀌어 있었다.

노인 인식 개선은 동정 어린 눈물이나 거창한 구호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들이 가슴에 채운 빗장을 풀 수 있도록, 노년의 삶을 우리와 똑같이 활기찬 ‘현재 진행형’으로 바라봐 주는 평등한 시선에서 시작된다.

후미진 역사를 빠져나오며, 나는 가슴을 펴고 당당히 걸음을 내딛는다. 내 등 뒤로 비치는 자화상이 그 어느 때보다 환하고 든든하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