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보면 20대의 나는 늘 무언가에 목이 말랐다. 공부에, 취업에, 사랑에. 잠 못 이루던 밤도, 가슴 졸이며 기다리던 시간도, 주위의 반대 앞에서도 끝내 돌아서지 못했던 그 미련도, 이제 와 생각하면 모두 같은 이름이었다. 간절함…

30대와 40대는 아이들이 삶의 전부였다. 작은 몸을 처음 품에 안던 날의 묵직한 무게감, 첫걸음을 떼려다 휘청이는 아이를 잡을까 말까 망설이던 찰나, 열이 펄펄 끓는 밤마다 차라리 내가 대신 아프게 해달라고 속삭이던 기도. 그런 간절한 밤들이 쌓여 비로소 나는 부모가 되었다.

50대가 되자 간절함의 시선이 조금 달라졌다. 장성한 아이들이 제 자리를 잡길 바라는 마음 한편으로, 어느새 부모님의 걸음이 눈에 띄게 느려진 것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손을 잡으면 예전보다 훨씬 여위고 가냘파진 그 손. 그제야 깨달았다. 내가 아이들 걱정에 밤을 새우는 동안, 나의 부모님도 평생 그런 마음으로 나를 바라보셨으리라는 것을.

하지만 시간은 기다려 주지 않았고, 부모님을 떠나보낸 후에야 온몸으로 느꼈다. 세상에 당연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매일 들을 수 있었던 목소리도, 언제든 달려가면 열려 있던 그 문도 사실은 단 한 번도 당연했던 적이 없었다. 더 자주 전화할 걸, 그 따뜻한 손을 한 번이라도 더 꼭 잡아 드릴 걸. 그 후회는 어떤 말로도 다 채울 수가 없었다.

그 상실의 시간을 지나며 빈 자리가 나를 바꾸어 놓았다. 이제 나의 간절함은 이전보다 조용하고 구체적이다. 무릎이 아프지 않아 다음 날 산책을 나설 수 있는 것,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오늘도 누군가에게 짐이 되지 않는 것. 부모님이 내게 큰 그늘이 되어 주셨듯, 나 또한 누군가에게 그런 평온한 그늘이 되고 싶을 뿐이다.

그런 마음을 품고 지내던 어느 날, 산책길에서 치자 가지 하나를 꺾어 왔다. 물에 담가 며칠을 지극정성으로 보살폈더니 기적처럼 뿌리를 뻗어냈다. 뿌리가 자리를 잡자 조심스레 화분에 옮겨 심었다. 다시 많은 시간을 기다리자 새잎이 돋았고, 마침내 봄볕이 따스한 오늘, 눈부시게 하얀 꽃이 피어났다. 얼마나 고대하며 설레던 날이었던가.

거실 가득 퍼지는 치자꽃 향기를 맡으며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아, 내 삶도 꼭 이 치자 가지와 같았구나 싶었다. 간절하게 뿌리 내리고, 애타게 잎을 틔우며 보낸 그 시간들이 쌓여 지금의 내가 되었다.

간절함은 그저 애타는 마음이 아니라, 묵묵히 견디며 기어이 꽃을 피워내겠다는 생의 의지였음을 이제야 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