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음직스럽고 예쁜 나주 배. 사진=송서화
마쓰후치 주택 전경. 사진=김경수 향토지리연구소 소장
“1915년 지적원도에 남아 있는 ‘松藤全六’” 부분. 사진제공=향토지리연구소 김경수소장
1977호남 원예고. 사진제공=향토지리연구소 김경수 소장
1977년 호남원예고. 사진제공=향토지리연구소 김경수소장
호남원예고. 사진제공=향토지리연구소 김경수소장

나주배가 1910년 일본에서 도입된 배나무 약 100주를 시작으로 근대적인 과수산업으로 발전한 지 116년을 맞았다. 조선시대부터 이어진 배 재배 전통에 새로운 품종과 재배기술이 더해지면서 재배가 확대됐고, 현재는 국내 대표 배 산지이자 수출 농산물로 자리 잡았다.

나주배의 근대산업화는 1910년 일본인 마쓰후지 전육이 나주 금천면 일대에 만삼길 배나무 약 100주를 심으면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마쓰후지 전육의 당시 거주지는 지적자료에서도 확인된다. 1915년 나주 금천면 원곡리 지적원도에는 221번지에 ‘松藤全六’이라는 이름과 택지가 표시돼 있다. 1910년 배나무 식재 기록과 함께 당시 마쓰후지의 활동 공간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다.

1977년 호남원예고등학교 앨범에는 학교 운동장 뒤편에 오래된 주택으로 보이는 건물이 담겨 있다. 관련 자료에서는 이 건물을 마쓰후지 전육의 주택으로 표시하고 있다. 1977년 지도에도 호남원예고등학교와 금천중학교가 표시돼 있어 옛 지적원도와 비교하면 당시 주택의 위치를 추적할 수 있다. 다만 현재 확보된 자료만으로는 앨범 속 건물이 마쓰후지 전육이 실제 거주했던 주택이라는 사실을 확정하기 어려워 ‘마쓰후지 주택으로 추정되는 건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나주의 배 재배는 일본인 중심의 과수원에서 지역 농가로 확대됐다. 1913년 송월동의 이동규가 과수원을 조성하면서 조선인 농가의 상업적 배 재배가 확산된 것으로 기록돼 있다. 1922년에는 나주역 인근에 나주과물조합이 설립됐고, 1929년 조선박람회에서는 나주배가 동상을 수상하면서 전국적으로 이름을 알렸다.

해외시장 진출도 이어졌다. 해방 직후 홍콩 수출 기록이 남아 있으며, 1967년에는 대만 수출이 시작됐다. 이후 미국과 캐나다 등을 비롯한 해외시장으로 수출이 확대됐다.

나주배 수출 규모도 커지고 있다. 2025년 나주지역 배 수출량은 4404t, 수출액은 1439만 달러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미국 수출량은 2858t으로 전체 수출량의 약 65%를 차지했다. 2026년산 나주배는 미국을 비롯해 북미·유럽·중동·아프리카 등 18개국 수출을 목표로 하고 있다. 목표 물량은 3500t, 수출액은 약 180억 원 규모다.

품종도 변화하고 있다. 나주시는 기존 신고배 중심의 재배 구조에서 벗어나 ‘신화’·’창조’·’슈퍼골드’·’설원’ 등 국내 육성 품종의 보급을 확대하고 있다. 특히 조생종인 ‘설원’은 수확시기를 분산하고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품종으로 주목받고 있다. 나주시는 2030년까지 설원 전문생산단지를 조성하는 등 국산 품종 확대를 추진할 계획이다.

조선시대부터 이어진 나주의 배 재배는 1910년 배나무 100주를 계기로 근대적인 산업으로 발전했고, 조선인 농가의 참여와 생산기반 확대, 해외시장 진출을 거쳐 오늘날의 나주배 산업으로 성장했다. 특히 1915년 지적원도에 남은 마쓰후지 전육의 이름과 1977년 옛 사진 속 건물은 나주배 근대산업의 출발 공간을 추적할 수 있는 역사적 자료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116년의 역사를 이어온 나주배는 이제 국산 품종 확대와 수출시장 다변화를 통해 새로운 성장 기반 마련에 나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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