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의 정자 10선 기획연재 네 번째 순서로 찾아간 곳은 전라남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벽류정’이다. 나주시 세지면 벽산리 475번지, 영산강 지류인 금천 곁 언덕 위에 자리한 이 정자는 380여 년의 세월을 견뎌오며 한 가문의 깊은 내력과 선비들의 발자취를 품고 있다.
벽류정 곁을 흐르는 금천은 세지면 중앙부를 관통해 오봉리에서 만봉천과 합류한 뒤 영산강 본류로 흘러드는 물줄기다. 예로부터 이 유역을 따라 나주평야가 펼쳐지며 농업이 발달했고, 토하젓과 세지멜론 같은 특산물을 키워낸 젖줄이기도 하다.
벽류정은 세종 때 참판을 지낸 조주의 별장이 있던 자리였으나, 외손인 김운해가 물려받아 1640년에 정자를 짓고 자신의 호를 따서 ‘벽류정’이라 이름 붙였다. 1862년에 판각된 원형 상량문에는 벽류정의 유래와 함께 영산강의 지류인 금천의 푸른 물결, 드넓은 나주평야, 수려한 사계절 경치가 표현돼 있다.

건물 구조는 정면 3칸, 측면 3칸 규모이며 가운데 온돌방을 두고 사방이 마루로 연결된 형태이다. 정자 주변에는 느티나무, 느릅나무, 팽나무 등 노거수들과 대나무숲이 에워싸고 있어 시원한 강바람과 함께 훌륭한 쉼터 역할을 한다.

정자 입구에는 김운해선생 유적비와 기적비가 세워져 있으며, 비문에는 당대 남부 지역을 대표하던 선비들이 이곳에 모여 교유했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또한 병자호란 이후 낙향한 이들의 학문과 의리를 기리기 위한 후손과 지역 유림들의 뜻도 함께 담겨 있다.
벽류정 현판은 서예 대가 영의정 황사 민규호와 어영대장 위당 신헌이 쓴 글씨이다. 벽류정 중수기, 상량문 등 11개의 편액도 정자 내부에 보존돼 있다. 특히 1678년에 작성된 ‘벽류정 중수기’는 지은이인 김수항이 전라도 영암으로 유배 중일 때 김운해의 손자들이 부탁하여 지은 유서 깊은 글이다.
이 중수기에는 깊은 역사적 일화가 담겨 있다. 병자호란 당시 척화의 의리를 지키다 청나라 심양으로 압송되었던 김수항의 조부 김상헌이 유배에서 풀려나 의주에 머물 때, 나주의 김운해 공이 머나먼 길을 찾아가 문안하고 위로했다. 이 인연을 바탕으로 작성된 중수기는 안동 김씨와 광산 김씨 가문 간의 3대에 걸친 신의와 의리를 증명하는 귀중한 역사적 기록물이다. 벽류정은 한 채의 정자를 넘어 두 가문의 오랜 인연을 증언하는 살아있는 사료적 가치를 지닌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후손 김경삼(73, 세지면) 씨는 “가문에서 대대로 이어져 내려온 정자에 대한 자긍심과 애정이 남다르다”라며, “분실된 것으로 여겨졌던 선대의 교지가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돼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으나 돌려받을 길이 없어, 인터넷 출력본을 액자에 담아 정자에 비치해 둠으로써 방문객들이 가문의 내력과 전통을 이해할 수 있도록 관리하고 있다”고 전했다.

올여름, 울창한 노거수의 녹음과 시원한 강바람이 반기는 벽류정에서 고즈넉한 여유를 만끽해 보시길 권한다. 영산강으로 이어지는 금천의 맑은 물줄기를 조망하며, 선조들이 나주평야의 품에서 풍류와 시심을 나누었던 영산강 문화권의 소중한 가치를 느껴볼 수 있을 것이다.



![[기획연재-위대한 역사 마한 ⑬]아기·어른 독널, 무덤 크기로 본 고대 반남의 가족사랑](https://naju-senior.com/wp-content/uploads/2026/07/기획연제13-5-218x150.jpg)
![[기획연재-위대한 역사 마한 ⑫]독널에 담긴 마지막 정성, 무덤 속 부장품 배치 법칙](https://naju-senior.com/wp-content/uploads/2026/07/기획연제12-1-218x150.jpg)
![[기획연재-위대한 역사 마한 ⑪] 천년의 장례, 독널 무덤 변천사와 묻기 과정](https://naju-senior.com/wp-content/uploads/2026/07/기획연제11-4-218x150.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