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의 설계자, 삼봉(三峰) 정도전(1342~1398). 우리는 대개 그를 경복궁의 기초를 세우고 한성방의 이름을 지은 화려한 정치가로 기억한다. 그러나 조선이라는 500년 국가의 거대한 뼈대를 이룬 핵심 사상인 ‘민본(民本)’의 싹이 튼 곳은 화려한 조정이 아닌, 전남 나주시 다시면 운봉리 고라실 들녘 끝자락에 위치한 작은 초당이었다.
고려 말 권문세족의 전횡과 친원 외교에 당당히 맞서다 유배길에 올랐던 삼봉. 그가 1375년(우왕 1년)부터 약 3년간 거처했던 나주 유배지 ‘소재(消災)동’을 찾아, 그가 마주했던 역사적 진실과 650년이 지난 오늘날 우리에게 남겨진 무형의 유산과 가르침을 직시해 본다.
“茅茨不剪亂交加 (茅茨不剪亂交加, 띳집 처마 자르지 않아 어지러이 얽혔고)
築土爲階面勢斜 (築土爲階面勢斜, 흙을 쌓아 계단 만드니 형세가 비스듬하네)”
– 삼봉 정도전, 초당에 걸린 시문 중에서
소박한 띳집 처마 아래서 목격한 ‘백성의 하늘’
다시면 유배지 현장의 초당 내부에는 삼봉이 당시의 고단한 심경과 처소를 묘사한 시문 편액이 선명하게 걸려 있다. “띳집 처마를 자르지 않아 어지러이 얽혀 있고, 흙을 쌓아 계단을 만드니 형세가 비스듬하다”는 고백처럼, 당대 최고의 지식인이었던 삼봉에게 이곳은 처절하리만치 소박하고 고립된 공간이었다.
그러나 이 비좁은 초당은 삼봉의 사상을 송두리째 뒤흔든 ‘학문적·정치적 혁명의 공간’으로 탈바꿈한다. 초당에 걸린 또 다른 편액인 ‘중추가(中秋歌)’는 유배지에서 맞이한 가을밤의 외로움과 개경을 향한 깊은 시름을 담고 있지만, 삼봉은 개인적 영달의 상실이라는 원망에만 머물지 않았다.
초당 앞마당에 세워진 ‘소재동비(消災洞碑)’의 고증에 따르면, 삼봉은 이곳에서 ‘황연(黃延)’이라는 현지 거민의 집에 첫 거처를 마련한 이래, 다시면 백동마을 농부들의 고단한 삶 속으로 직접 걸어 들어갔다. 그리고 목격했다. 국가의 주인이어야 할 백성이 생산 수단이자 삶의 기반인 자산(토지)을 완전히 박탈당했을 때 공동체가 어떻게 처참하게 무너지는지를.
여기서 나온 삼봉의 위대한 통찰이 바로 ‘계민수전(計民授田)’, 즉 국가의 전형적인 관료적 토지 제도를 넘어 인구수를 헤아려 모든 백성에게 토지를 골고루 나누어 주어야 한다는 균전(均田) 사상이었다.
새 왕조를 설계하며 대토지 독점 체제를 근본적으로 혁파하고자 고뇌했던 그 기저에는, 바로 이 나주 다시면 유배 시절의 처절한 목격과 고증이 있었다. 기득권의 자산 독점을 전면적으로 깨뜨리는 과감한 ‘제도적 균전(均田)’ 없이는 그 어떤 정치가도, 국가도 존립할 수 없다는 준엄한 통찰이었다. “백성의 하늘은 밥(食)이며, 그 밥은 땅에서 나온다”는 민본주의의 초석은 그렇게 나주의 거친 흙먼지 속에서 싹을 틔웠다.
삼봉의 민본주의가 오늘날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길
초당 한구석에 모셔진 삼봉의 영정을 지긋이 바라본다. 굳게 다문 입술과 매서운 눈빛은 세습군주제의 모순만큼이나 무서운 금융자본주의의 양극화와 자산 독점의 세류 속을 살아가는 오늘날의 우리에게 묵직한 가르침을 던지고 있다.
650년 전 삼봉의 통찰이 21세기 현대 사회에 주는 메시지는 명확하고 준엄하다.
첫째, 자산과 권력의 독점은 공동체를 파괴한다는 경고다. 과거 권문세족의 토지 독점이 민초들의 삶을 벼랑 끝으로 몰고 갔듯, 현대의 금융자본주의 하에서 벌어지는 자산 양극화 역시 인간의 존엄과 가계의 자립을 위협하고 있다. 삼봉의 ‘균전(均田)’ 정신은 오늘날 우리에게, 자본의 숫자가 인간의 삶을 압도하지 않도록 부의 편중을 막고 분배의 정의를 실현할 제도적 보완책을 끊임없이 고민해야 한다는 과제를 던진다.
둘째, ‘밥의 가치’ 즉, 민생의 안정이야말로 모든 정치와 제도의 출발점이라는 점이다. 주류 경제학이 거시적인 지표와 성장률에 매몰될 때, 삼봉의 민본주의는 가장 낮은 곳에 있는 평범한 가계들의 구체적인 삶이 안정되는 것이 우선임을 역설한다. 사회적 안전망을 구축하고, 개인이 거대 자본에 종속되지 않고 주체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생존의 토대’를 다져주는 것이 국가와 공직의 제1사명이라는 가르침이다.
영산강 고라실 들녘에서 쓴 민본주의, 시대의 이정표가 되다
다시면 운봉리 초당 뒤편의 대숲을 뒤흔들며 영산강으로 불어가는 바람 소리는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매섭게 묻고 있다. 우리는 자본의 무한 경쟁 속에서 주권자인 인간의 가치를 잃어버리고 있지는 않은가.
나주 다시면 소재동의 작은 초당은 화려한 관광지는 아니지만, 엄혹한 현실 속에서도 시대의 모순을 직시하고 위기를 비전으로 개척해 나간 위대한 사상가의 매서운 기개가 서려 있는 곳이다. 650년 전 삼봉이 씨앗을 뿌린 민본의 정신은 시공간을 뛰어넘어, 오늘날 양극화로 신음하는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인간 중심의 경제와 정의로운 제도의 길을 밝게 비추는 거대한 이정표로 우뚝 서 있다. 이곳은 주변의 백호 임재 선생 기념관(백호문학관)과 연계해 사색하며 걷기 좋은 역사문화 산책코스로도 손색이 없다. 시대를 관통하는 삼봉의 통찰을 유산으로 지속가능한 우리들의 역사를 써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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