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읍성의 동점문. 현판을 중심으로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고 있다. 사진=김동애
나주의 아침을 여는 문, 동점문 천장의 화려한 단청. 사진=김동애
나주 사람들의 일상이 살아 숨 쉬는 목사골 5일 전통시장. 사진=김동애

나주 구도심의 아침은 유독 눈부십니다. 화려한 고층 빌딩은 없지만, 낮은 지붕들 사이로 스며드는 햇살이 유난히 따스한 동네. 그 입구에는 나주읍성의 동쪽 문, ‘동점문(東漸門)’이 든든하게 서 있습니다.

동점문의 이름 속 ‘점(漸)’자는 ‘서서히 젖어들다’ 혹은 ‘점차 밝아진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름 그대로 이곳은 나주에서 가장 먼저 햇살을 맞이하는 곳입니다.

수백 년 전, 새벽 안개가 채 가시기도 전의 동점문을 상상해 보세요. 밤새 수확한 싱싱한 채소를 머리에 이고 온 농부들, 보따리를 짊어진 장돌뱅이들로 문 앞은 늘 북적였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생계를 위한 치열한 일터였고,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소식을 듣는 소통의 광장이었죠.

놀라운 점은 수백 년 전 동점문 앞에서 시작된 그 활기가 지금까지도 현재진행형이라는 사실입니다. 동점문 바로 곁에는 나주를 대표하는 ‘목사골 오일시장(4일, 9일 장)’이 자리 잡고 있어, 장날이 되면 나주 전역에서 모여든 사람들로 발 디딜 틈 없이 북적입니다.

살아 있는 역사의 현장이었던 조선 시대 동점문을 통해 흘러든 물자들이 모여 장터가 형성됐던 그 흐름이 오늘날의 오일시장으로 고스란히 이어졌습니다.

투박한 사투리가 오가는 흥정 소리, 제철을 맞은 농산물의 싱싱한 빛깔, 그리고 장터 입구에서 풍겨오는 고소한 먹거리 냄새까지. 이곳은 박제된 유적지가 아니라 나주의 심장이 여전히 뛰고 있음을 증명하는 생생한 삶의 현장입니다.

역사의 부침도 있었습니다. 일제강점기 시절 성벽이 헐리는 아픔을 겪었지만, 나주 사람들은 쓰러진 성 돌을 그냥 버려두지 않았습니다. 주민들은 그 돌을 가져다 집을 짓고 담장을 쌓았습니다. 성벽은 무너졌어도, 그 돌들은 우리 이웃의 삶을 지탱하는 단단한 울타리가 되어 주었습니다. 비록 지금은 다시 복원된 성문의 모습이지만, 그 바탕에는 시대를 견디며 함께 살아온 공동체의 끈질긴 생명력이 흐르고 있습니다.

동점문은 과거에 머물러 있는 문이 아닙니다. 장날의 활기찬 함성 소리를 품고, 오늘을 살아가는 나주 사람들의 일상을 묵묵히 지켜보고 있습니다.

나주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면, 장날에 맞춰 동점문을 찾아보시길 권합니다. 낡은 성문 너머로 흐르는 나주의 시간을 따라 걷다가, 오일시장의 북적이는 인파 속에서 국밥 한 그릇 나누는 여유. 그것이 바로 이번 역사 여행의 진정한 시작일지도 모릅니다.

[Tip] 나주의 시간을 걷다: 나주읍성 시간 여행답사 코스 기사에서 만난 동점문을 시작 으로 나주의 숨결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걷기 코스를 소개합니다. 약 1시간에서 1시간 30분 정도(2~3km) 소요되는 이 길 위에서 여러분만의 ‘삶의 무늬’를 발견해 보세요.

코스 안내:동점문(시작) ➡️ 목사골 오일시장 ➡️ 옛 나주역 ➡️ 금성관 ➡️ 나주목 문화관 ➡️ 목사내아(금학헌) ➡️ 서성문(영금문) ➡️ 사매기 골목 ➡️ 북망문 & 남고문(선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