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계정의 정면 모습. 사진=박옥화

[기획연재 · 바람이 머물고 역사가 흐르는 나주의 정자 ①] 녹음이 짙어가는 5월의 끝자락, 발걸음이 향한 곳은 호남의 3대 명촌으로 꼽히는 나주시 노안면 금안리 마을이다. 마을 한가운데에는 오랜 세월 주민들의 삶과 함께해 온 전라남도 유형문화유산 ‘금안리 쌍계정(雙溪亭)’이 자리하고 있다.

흔히 정자라고 하면 깊은 계곡이나 절벽 끝 풍류의 공간을 연상하지만, 쌍계정은 주민들의 삶의 터전 한복판에 당당히 서 있다. 이곳은 고려 충렬왕 때의 학자 정가신이 창건한 이래, 고려 말 윤보, 김주정 등 당대의 명신(名臣)들과 석학들이 학문을 연구하고 교류하던 문학의 산실이었다. 마을의 중심에서 향촌 자치와 미풍양속을 논하던 공간이었기에, 격동의 세월 속에서도 마을 공동체를 유지하는 든든한 중심지 역할을 해올 수 있었다.

쌍계정의 초여름 풍경을 완성하는 주인공은 정자를 호위하듯 지키고 선 노거수들이다. 특히 나주에서 가장 오래된 ‘400년 수령의 양날개 푸조나무 보호수’는 정자 바로 곁에서 거대한 푸른 지붕을 얹어내며 싱그러운 기운을 뿜어낸다. 나무 사이로 모습을 드러낸 쌍계정은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로, 책을 엎어놓은 듯한 소박한 ‘맞배지붕’ 구조를 취해 화려하기보다 단정하다.

쌍계정과 양날개 푸조나무. 사진=박옥화
푸조나무의 웅장한 모습. 사진=박옥화

수많은 전란과 정쟁 속에서도 쌍계정이 오늘날까지 온전할 수 있었던 비결은 신분과 가문을 초월한 공동체 자치 규약인 ‘대동계(大同契)’ 덕분이다. 계원들은 정자가 무너질 위기 때마다 십시일반 힘을 모아 역사상 총 5회의 중수를 거치며 이곳을 지켜냈다.

쌍계정 중수기. 사진=박옥화

사방이 탁 트인 우물마루에 걸터앉으면 내부에 걸린 현판들이 눈에 들어온다. 조선 최고 명필 한석봉의 친필로 전해지는 ‘쌍계정’ 현판이 당당한 기개를 뽐내고, 그 맞은편에는 ‘사성강당(四姓講堂)’이라는 글귀가 묵직하게 마주 보고 있다. 성씨가 다른 네 가문(나주 정씨·하동 정씨·서흥 김씨·풍산 홍씨)이 갈등 대신 화합을 택하며 양보와 협치로 정자를 공동 관리해 온 공간이다. 수백 년간 이어져 온 ‘마을 공동체’의 약속은, 오늘날 보기 드문 대동(大同)의 기록으로 이 마루 공간에 고스란히 배어 있다.

사성강당 현판 사이로 보이는 전경. 사진=박옥화

오늘날 금안리 쌍계정은 고즈넉한 돌담길과 어우러진 훌륭한 로컬 역사 문화 관광 자원이다. 푸조나무 그늘 아래서 선비들의 기상을 느낀 후 마을 안길을 걸으면, 보한재 신숙주 선생의 생가터와 고려 말·조선 초의 명장 정지 장군을 배향한 경렬사(景烈祠) 등 굵직한 역사 유적지를 자연스럽게 만나게 된다. 여기에 마을의 수려한 풍광을 노래한 ‘금안동 8경’을 찾아내는 묘미도 가득하다.

금안리 마을안의 돌담길 모습. 사진=박옥화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상생과 화합의 정신을 가장 낮은 곳에서 실천하고자 했던 금안리 쌍계정의 마루에 올라보자. 오랜 세월을 버텨낸 푸조나무의 짙은 녹음과 옛 돌담길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진정한 상생과 공동체의 가치가 무엇인지 묵묵히 이야기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