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문화관 전경. 사진=우미옥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나주는 ‘나주곰탕’과 ‘배’로 기억되는 도시다. 그 이상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하지만 고즈넉한 읍성 골목 안에 한 발만 들여놓으면, 이 도시가 얼마나 오랫동안 한반도 서남권의 구심점이었는지 새삼 실감하게 된다.

“알면 참으로 사랑하게 되고, 사랑하면 참으로 보게 되고, 보면 간직하게 되니 한갓 간직함이 아니다.”

유홍준 선생이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머리말에 인용한 이 문장은, 나주를 알아가는 과정에서 자꾸만 떠오르는 말이다. 이 글을 쓴 이는 조선 후기 문인 유한준(兪漢雋)이다. 원래 글씨와 그림을 논하는 맥락에서 쓴 문장이지만, 한 도시의 역사를 대하는 태도로도 이보다 더 정확한 말은 없다. 나주가 꼭 그렇다.

먼저, 한 그릇

오랫동안 나주에서 살아온 사람도, 이곳에서 근무하는 사람도 종종 “나주는 딱히 볼 거 없다”는 말을 한다. 그러나 나주읍성권을 하나씩 알아가다 보면 그 생각이 뒤집힌다. 나주는 단순히 ‘볼 것’이 있는 도시가 아니라, ‘알아갈수록 깊어지는’ 도시다.

나주읍성을 처음 찾는 여행자라면 금성관 앞 곰탕거리에서 진한 곰탕 한 그릇을 비우는 것이 순서처럼 느껴진다. 맑고 묵직한 국물 한 모금을 넘기고 나면 자연스럽게 골목 안으로 발걸음이 향한다. 그 끝에 소박하면서도 단단한 건물 하나가 조용히 기다리고 있다. 바로 나주목문화관이다.

‘목(牧)’이 된다는 것의 무게

983년, 고려 성종은 나주를 ‘목(牧)’으로 지정했다. 이후 1895년 나주 관찰부가 설치될 때까지 나주목은 유지됐다. ‘목’이란 단순한 행정 단위가 아니었다. 전라남도에서 유일하게 목으로 지정된 나주는 이 일대의 경제·문화·군사의 중심지 역할을 담당했다. 한 지역이 그토록 오랫동안 서남권의 구심점으로 기능했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경이롭다.

나주목문화관은 목사내아(금학헌) 바로 옆에 자리하고 있다. 겉모습만 봐서는 그 깊이를 짐작하기 어렵다. 하지만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천 년이 넘는 시간이 한꺼번에 펼쳐진다.

여러 문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들

문화관 내부는 ‘어향나주 목이 되다’, ‘나주목사 부임행차’, ‘나주읍성 둘러보기’, ‘관아 둘러보기’, ‘다시 태어나는 나주’ 등 여러 주제관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긴 역사를 스쳐 간 320명에 이르는 목사들의 명패와 목사의 하루 일정도 살펴볼 수 있다.

그중에서도 눈길을 오래 붙드는 것은 조선시대 나주읍성 디오라마다

정밀하게 제작된 읍성 모형 앞에 서면, 둘레 약 3.5km에 달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읍성의 전체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 모형을 꼼꼼히 살펴두면, 이후 읍성 일대를 걸을 때 훨씬 더 깊은 감흥을 느낄 수 있다. 목사 부임 행차를 재현한 전시 역시 인상적이다. 70여 명의 인물을 한지 인형으로 생생하게 되살려, 교과서 속 문자로만 접하던 조선의 지방 통치를 눈앞에 펼쳐 보인다.

나주읍성 여행의 ‘첫 장’으로

나주 원도심 관광의 핵심은 금성관, 나주목문화관, 나주목사내아를 중심으로 이어진다. 이 세 곳은 걸어서 5분 거리 안에 모여 있어 하나의 흐름으로 둘러보기에 좋다. 여행자들은 대개 곰탕거리에서 식사를 마친 후 금성관을 먼저 보고, 이어 나주목문화관과 목사내아를 차례로 찾는다.

순서를 살짝 바꿔보는 것도 권할 만하다. 나주목문화관을 가장 먼저 들르는 것이다. 전시를 통해 나주목의 역사와 읍성의 구조를 머릿속에 새겨두고 나면, 이후 마주치는 금성관의 기둥 하나, 목사내아의 담장 하나가 전혀 다르게 보인다. 배경 지식은 풍경을 이야기로 바꾼다.

깨비 전동차 여행

읍성 내를 좀 더 풍성하게 돌아보고 싶다면, 금성관 주차장에서 출발하는 전동 인력거 투어를 활용해볼 것. 소요시간 약 1시간 30분~2시간, 2~4인 기준 1대당 35,000원이며 나주사랑상품권 5,000원을 제공한다. 코스에 나주목문화관도 포함되어 있어, 읍성 안에서 오래 살아온 인력거꾼의 생생한 나주 이야기와 함께 주요 명소를 한 번에 둘러볼 수 있다.

무료로 열린 천 년의 문

나주목문화관은 나주시에서 직접 운영하며,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무료로 개방된다. 입장료도, 예약도 필요 없다. 그저 문을 밀고 들어서면 된다.

역사는 언제나 거창한 곳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때로는 읍성 골목 안 작은 문화관 한 채가, 어떤 화려한 전시보다 더 묵직한 시간의 무게를 전해준다. 나주읍성권을 여행하는 이라면, 그 고요한 무게를 꼭 한번 직접 느껴보길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