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어느 해의 끝자락, 나주 구도심 한켠에 서 있는 정수루(正綏樓) 앞마당에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나주시가 주관하는 북두드림 행사에 시민들이 발걸음을 맞추어 찾아온 것이다. 입에서 나오는 하얀 입김 사이로 북소리가 울려 퍼지고, 누군가는 소원을 종이에 적어 내려갔으며, 따뜻한 떡국 한 그릇이 손에서 손으로 건네졌다.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는 그 의식은 단순한 지역 행사가 아니었다. 수백 년 역사를 간직한 누각의 기운과 살아있는 사람들의 소망이 하나로 만나는, 나주만의 귀한 풍경이었다.
그 행사가 멈춘 지 오랜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다시 정수루 앞에 서본다. 이 누각은 지금 이 순간에도 조용히 나주의 어제와 오늘을 잇고 있다.
바를 정(正), 갓끈 수(綏) — 정수루가 품은 뜻
정수루는 나주목 관아의 정문 누각이다. ‘바를 정(正), 갓끈 수(綏)’라는 이름 그대로, 관아에 들어서기 전 의관을 단정히 하고 마음가짐을 바로잡으라는 가르침을 담고 있다. 단순히 공간을 구분하는 문이 아니라, 공직자와 백성 모두에게 몸과 마음을 정갈히 하도록 이끄는 정신적 경계였다.
이 누각을 처음 세운 이는 조선 선조 36년(1603년) 나주목사로 부임한 동계(桐溪) 우복룡(禹伏龍)이다. 그런데 2층에 걸린 북의 사연은 누각보다 앞선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조선 선조 시절 학봉(鶴峰) 김성일(金誠一)이 나주목사로 재임하던 1583년 8월부터 1586년 10월의 일이다. 김성일은 나주 부임 당시 번화한 고을인 만큼 민정이 막힐 것을 염려하여 북 하나를 내걸도록 하고 영(令)을 내렸다. ‘만약 원통한 일을 하소연하고 싶은 자는 반드시 와서 이 북을 치라’고. 그러자 백성들이 의견이 있으면 반드시 진달해 일이 막히는 법이 없어 위아래가 서로 화합하니 온 고을 백성들이 크게 기뻐하였다고 전해온다.
이 북은 한편으로는 시간을 알리는 역할을 했다고도 전해지며, 다른 한편으로는 억울한 백성이 직접 두드려 원통함을 호소하는 신문고였다는 설도 함께 내려온다. 두 가지 설이 공존하지만, 어느 쪽이든 정수루의 북이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목민관과 백성 사이의 소통을 담은 상징이었다는 점은 분명하다. 즉 정수루라는 누각은 우복룡이 세우고, 그 안에 걸린 북의 정신은 김성일이 심었다. 두 목민관의 손길이 켜켜이 쌓여 오늘의 정수루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지금 정수루 2층에 걸린 북은 2003년 나주시가 새로 제작하여 설치한 복원품이다.
호남의 고도(古都), 나주가 지닌 무게
나주는 호남의 고도(古都)로 불리는 도시다. ‘나주목사골’이라는 별칭이 말해주듯, 고려와 조선을 거치며 호남 행정의 중심지였다. ‘전라도(全羅道)’라는 이름 자체가 전주(全州)와 나주(羅州)의 첫 글자를 합친 것이니, 나주가 호남에서 차지해온 위상은 이름 석 자에 고스란히 새겨져 있다.
정수루가 자리한 나주 관아 일대는 그 역사의 밀도가 가장 두터운 곳이다. 인근의 금성관(錦城館)은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 김천일 선생의 근왕의병 출정식이 열린 장소였고, 을미사변 이후 명성황후의 빈소가 마련되어 항일 의지를 불태웠던 역사의 무대이기도 하다. 단발령에 맞선 의병의 함성, 1929년 나주역에서 불씨가 당겨진 광주학생항일운동의 열기도 이 관아 일대를 지나쳤다. 정수루는 그 모든 시간의 한가운데에서 묵묵히 서 있었다.
나주시가 주관하고 시민이 함께한 북두드림
한때 나주시는 매년 연말 정수루 앞에서 북두드림 행사를 주관했다. 나주시가 기획하고 이끌었지만, 그 행사가 살아있었던 힘은 시민들의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동참에서 나왔다. 시민들이 직접 2층에 걸린 북을 두드리고, 소원을 적은 종이를 내걸고, 함께 떡국을 나눠 먹으며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했다. 관(官)이 열고 민(民)이 채워 넣은, 진정한 의미의 시민 축제였다.
그 북소리에는 겹겹이 쌓인 의미가 있었다. 김성일 목사가 백성의 목소리를 직접 듣겠다며 내걸었던 북의 울림이, 한 해의 고단함을 털어내는 시민들의 타격 소리 위에 자연스럽게 포개졌다. 역사는 박물관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생활 속에서 반복되고 새로워질 때 비로소 살아 숨 쉰다는 것을, 그 행사는 조용하지만 힘 있게 증명하고 있었다.
그 풍경이 사라진 지금, 정수루 앞은 조용하다. 관광객이 카메라를 들이대고, 이따금 지역 주민이 발걸음을 멈추기도 하지만, 연말의 북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는다.
다시 북이 울려야 하는 이유
역사적 공간의 보존은 물리적 복원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2003년 나주시가 새 북을 만들어 정수루에 다시 달았을 때, 그것은 단지 오래된 유물을 대체하는 행위가 아니었다. 백성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겠다는 김성일의 뜻을, 그리고 관아를 드나들며 마음을 바로잡으라 했던 우복룡의 정신을 현재의 시간 속에 다시 살려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정수루의 북소리를 다시 울리는 일은, 단지 사라진 연말 행사를 되살리는 것이 아니다. 나주시가 그 뜻을 주관하고, 시민 모두가 소원을 담아 두드릴 때, 역사의 무게와 현재의 삶이 하나의 북소리 안에서 공명하게 된다. 그것이 나주가 지닌 문화도시로서의 진짜 가능성이다.
떡국 한 그릇의 온기, 소원을 적는 손끝의 떨림, 그리고 정수루 2층에서 퍼져나가는 북소리. 우복룡이 세운 누각과 김성일이 달아둔 북의 정신이 함께 어우러진 그 소리가, 나주시의 손으로 다시 열리고 시민의 마음으로 가득 채워지는 연말의 풍경이 되기를 바란다. 천 년 고도 나주의 기운은, 결국 그 땅에 사는 사람들이 역사와 함께 숨 쉴 때 비로소 온전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