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주읍성 동점문을 나서다 골목 한편에 우뚝 솟은 이 기둥과 눈이 마주쳤을 때, 솔직히 무심코 지나칠 뻔했다. 아무 의미 없이 마주하게 된 석당간은 처음엔 그냥 돌기둥이었다. 그런데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이 돌기둥 하나에 천 년의 이야기가 켜켜이 쌓여 있었고, 그 이야기를 읽어 내는 순간 나주라는 도시 전체가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보물 제49호 나주 동점문 밖 석당간(羅州 東漸門 밖 石幢竿)은 박물관 유리장 안의 유물이 아니다. 지금도 주민이 오가는 마을 골목 한복판에 자연스럽게 서 있다.
당간(幢竿)은 사찰 앞에 세워 법회나 행사 때 깃발을 내거는 깃대로, 우리나라에 남은 대부분은 양옆 지주만 남고 본체는 사라졌다.
그런데 이 나주 석당간은 지주와 당간이 함께 온전히 살아남아 그 자체로 이미 특별하다. 5개의 돌을 서로 맞물리게 쌓아 올린 원통형 석주는 아래가 굵고 위로 갈수록 가늘어지며, 꼭대기에는 팔각형 보개와 연꽃봉오리 모양 보주를 얹었다.
아래에서 시선을 천천히 올리다 보면 하늘을 향해 좁아지는 돌의 흐름 속에 고려 장인의 손길이 선연하게 살아난다. 그런데 이 석당간을 불교 유물로만 보면 절반만 이해하는 것이다. 이곳에 사찰이 있었다는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나주의 지형이 물 위에 떠 있는 배 모양이라는 풍수 해석에서, 배가 안전하게 항해하려면 돛대가 있어야 한다는 믿음으로 이 기둥을 세웠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부처의 법을 알리는 깃대가 도시를 수호하는 돛대가 된 것이다. 불교 신앙과 풍수 사상, 두 개의 언어가 하나의 돌 위에서 만난 순간이었다.
석당간이 선 자리도 예사롭지 않다. 나주읍성의 동점문(東漸門)은 『서경』의 “동쪽으로 바다에 물 젖는다”는 구절에서 이름을 따왔다. 나주천이 동으로 흘러 바다에 이르듯 나주의 덕망이 사방에 미치기를 바라는 뜻이 담긴 이름이다.
2006년 복원된 이 문 바깥에, 석당간은 읍성 안으로 들어서기 전 가장 먼저 마주치는 나주의 얼굴로 서 있다. 천 년 전 이 길을 오갔을 나그네도, 장삿길 상인도, 먼 곳에서 온 관리도 이 돌기둥 앞을 지나쳤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이 골목을 걷는 우리도 같은 자리에서 같은 기둥과 마주한다.
어떤 이에게 이 돌기둥은 나주의 뿌리다. 급속한 변화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정체성, “우리는 여기서 왔다”는 감각을 지켜 주는 존재다.
어떤 이에게는 도시 재생의 출발점이다. 유리 안에 갇히지 않고 살아 있는 마을 한복판에 서 있는 이 방식, 일상과 역사가 경계 없이 공존하는 이 풍경 자체가 나주만이 내세울 수 있는 가장 진실한 브랜드다.
그리고 이 골목을 처음 걷는 젊은 여행자에게는 하나의 질문이다.
천 년 전 사람들이 두 개의 다른 믿음을 하나의 돌 위에서 융합해냈듯, 지금 우리는 무엇을 이 도시의 다음 이야기로 쌓아갈 것인가.
동점문 밖 이 골목에서 잠시 걸음을 멈춰 보길 권한다.
의미 없어 보이던 돌기둥이 천 년의 역사를 읽어 내는 기쁨으로 바뀌는 그 순간부터, 나주 여행은 비로소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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