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농경의 시작과 결실의 순간, 온 마을 주민이 대지에 모여 가무와 제천 의식을 올렸던 마한의 공동체 축제
문헌 기록(삼국지 위서 동이전) 속에 전해지는 마한 고유의 대규모 축제 문화와 영산강 유역의 삶
개인의 경계를 넘어 노래와 춤으로 연대하고 대지의 풍요를 기원했던 고대 나주평야의 문화적 에너지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비옥한 나주평야의 농경 생산력과 철기 문화, 그리고 바닷길을 누비던 글로벌 해양 무역은 영산강 유역 마한 사회에 물질적 풍요를 선사했다. 그러나 물질의 풍요만으로는 거대한 문명과 공동체의 깊은 결속을 온전히 지탱할 수 없는 법이다. 이번 제27부에서 조명할 **‘마한의 축제와 공동체적 소통’**은 고단한 대지 개간과 농사일 속에서 주민들의 마음을 하나로 묶고, 영원한 생명력을 충전했던 영산강 유역 마한인들의 뜨거운 문화적 심장부에 관한 이야기다.
고대 사회에서 축제는 단순한 놀이나 휴식이 아니었다. 그것은 자연의 거대한 순환에 순응하며 씨앗을 뿌릴 때 풍년을 기원하고, 곡식을 거두어들일 때 하늘과 대지에 감사드리는 가장 엄숙하고도 신명 나는 종교적·사회적 의례였다. 중국의 역사책인 《삼국지》 위서 동이전 마한 조에 기록된 바에 따르면, 마한인들은 파종이 끝나는 5월과 수확이 끝나는 10월이면 어김없이 온 마을 사람들이 모여 거대한 제천 의식을 거행하곤 했다.
대지를 두드리는 발걸음, 노래와 춤으로 하나 된 마한의 민초들
5월의 싱그러운 들판에 씨앗을 뿌린 직후나, 10월의 황금빛 결실을 거두어들인 만추의 계절이 되면 나주평야 일대의 마한 마을들은 온통 축제의 장으로 탈바꿈했다. 일상적인 노동의 고단함을 털어내고 신단(神壇) 앞에 모인 사람들은 수십 명이 줄을 지어 뒤따르며 땅을 밟고 춤을 추었다.
이들이 선보인 춤과 노래는 발을 맞추고 몸을 흔드는 동작을 통해 대지의 기운을 북돋우고 신령을 즐겁게 하는 주술적 의미를 담고 있었다. 음악이 울려 퍼지고 술과 음식이 풍성하게 오가는 동안, 신분이나 빈부의 격차를 넘어 온 마을 주민들은 하나의 거대한 생명 공동체로 동화되었다. 영산강의 너른 품 아래 살아가던 마한인들에게 이 축제는 서로의 안부를 묻고 결속을 다지는 가장 강력한 사회적 연대의 장이었다.
공동체의 영혼을 지탱한 나눔과 화합의 문화
마한의 축제 문화가 지닌 또 하나의 위대한 미덕은 바로 ‘나눔’과 ‘포용’에 있었다. 거둔 곡식을 함께 나누고 제물을 올리며 슬픔과 기쁨을 공유했던 그들의 풍모는, 오늘날 우리가 잃어버려 가는 공동체적 유대의 본질을 깊이 있게 되짚어 보게 만든다.
화려한 금동관이나 웅장한 옹관 무덤이 지배층의 위엄을 상징했다면, 대지 위에서 펼쳐진 이 신명 나는 춤과 노래의 축제는 평범한 백성들과 민초들이 삶의 주인공으로 당당히 숨 쉬었음을 증명하는 문화적 유산이다.
[기자수첩]
비옥한 나주평야를 스쳐 가는 초가을의 바람 속에서 눈을 감으면, 수천 년 전 영산강변의 너른 마당에서 울려 퍼졌던 북소리와 마한인들의 흥겨운 노랫소리가 환영처럼 들려오는 듯하다. 대지와 소통하고 이웃과 마음을 나누며 삶의 고단함을 축제로 승화시켰던 마한 선조들의 따스한 온기와 연대의 정신은, 오늘날 우리 고향 나주의 넉넉한 인심과 문화적 자긍심 속에도 여전히 찬란하게 살아 숨 쉬고 있다.
이어질 제28부 [토기 속에 남겨진 조개껍데기와 물고기 뼈, 고대 반남인들의 풍성한 식탁]에서는 영산강과 평야가 내어준 자연의 선물로 차려졌던 마한인들의 실제 밥상과 식생활 문화를 구체적으로 들여다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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