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년의 고도 나주를 품고 흐르는 영산강, 그 고즈넉한 물길 위로 붉게 물드는 황혼의 시간을 마주하다. 황포돛배가 전하는 시간 여행의 낭만 속으로. 사진=생성형인공지능(정웅남)
끝없이 펼쳐진 황금빛 대지의 숨결, 하늘에서 내려다본 호남평야의 가을. 하늘과 맞닿을 듯 드넓게 펼쳐진 호남평야가 가을 햇살을 받아 황금빛으로 물결치고 있다. 곡창지대의 웅장한 규모와 풍요로움이 한눈에 들어오는 장관이다. 이미지=생성형인공지능(정웅남)

​철기 농기구의 보급과 광활한 나주평야의 개척이 이뤄낸 고대 농업 생산력의 극대화​

영산강 수로와 서해 바다를 잇는 거대한 해양 물류 네트워크… 고대 동아시아 교류의 허브로 도약한 마한​

​역사의 흐름 속에서 강력한 국가와 문명이 탄생하기 전에는 언제나 흔들림 없는 경제적 토대가 존재하기 마련이다. 제23부에서 엿본 소박한 토기 그릇들과 따스한 밥상의 온기가 평범한 마한인들의 일상을 지탱했다면, 그 풍요로운 일상을 가능하게 한 거대한 동력은 과연 어디에서 비롯되었을까. 영산강 유역을 중심으로 전개된 고대 마한 사회는 기름진 대지와 사통팔달의 물길을 움켜쥔 채, 당시 고대 동아시아 세계에서 부러울 것 없는 독보적인 경제적 번영을 구가하고 있었다.

​철기 혁신과 나주평야의 대지: 멈추지 않는 농경의 대서사시

​마한 경제력의 첫 번째 뿌리는 단연 눈부시게 발전한 철기 문화와 이를 바탕으로 한 비약적인 농업 생산력의 증대에 있다. 삼국시대 이전부터 영산강 유역의 마한인들은 무쇠로 만든 보습, 괭이, 낫 등 선진적인 철제 농기구를 자유자재로 구사했다. 단단한 철제 도구의 보급은 과거의 원시적인 개간 방식을 완전히 혁신해 놓았다.

​광활하고 비옥한 나주평야와 구릉 지대 구석구석이 거대한 논과 밭으로 탈바꿈했으며, 사계절 마르지 않는 수자원을 활용한 체계적인 관개 농업이 확고하게 자리를 잡았다. 쌀과 보리 등 곡물의 대량 생산은 단순한 자급자족의 단계를 가볍게 뛰어넘어 사회 전체의 잉여 생산물을 폭발적으로 늘렸다. 이 거대한 식량 자원은 인구의 증가를 이끌어냈고, 각 지역 마을 공동체가 더욱 견고하고 체계적인 정치·사회 조직으로 진화하는 가장 든든한 쌀 곳간이 되어 주었다.

영산강 뱃길과 서해 바다: 고대 해양 무역의 중심지를 호령하다

​마한의 경제력은 단순히 내륙의 농경에만 머물지 않았다. 영산강 유역의 지리적 이점은 마한을 내륙의 농업 국가를 넘어 대외 교류와 해양 무역의 중심지로 우뚝 서게 만들었다. 영산강의 거대한 물줄기는 서해 바다로 곧장 이어졌고, 마한인들은 이 천혜의 뱃길을 활발하게 누비며 한반도 남부와 중국, 일본, 그리고 북쪽의 선진 문화를 연결하는 거대한 물류 네트워크의 주역으로 활약했다.

​강을 따라 오르내리던 배들에는 나주평야에서 수확한 풍부한 곡식뿐만 아니라, 철기 제품과 토기, 그리고 바다 건너 들여온 각종 고급 위세품들이 가득 실렸다. 이러한 활발한 역내 및 대외 교류는 마한 사회에 막대한 부(富)를 축적시켰고, 지배층은 이 경제적 우위를 바탕으로 화려한 금동관과 철기 무기, 정교한 장신구들을 제작하며 독자적이고 세련된 문화의 꽃을 피워낼 수 있었다.

​[기자 수첩]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고향 나주의 너른 들판과 유유히 흐르는 영산강은 단지 아름다운 자연경관에 그치지 않는다. 그 대지와 물길 속에는 수천 년 전 철기 도구를 쥐고 땀 흘리며 대지를 일구고, 거친 바다로 배를 띄워 세상과 소통했던 마한인들의 치열하고도 지혜로운 경제적 발자취가 깊게 스며 있다. 땀 흘린 노력이 풍요로운 수확으로 돌아오고, 그 번영이 다시금 찬란한 문화의 꽃으로 피어났던 마한의 역사. 황금빛 들판과 물결치는 뱃길 위에서 완성된 마한의 경제적 자긍심은 오늘날 우리 고향의 대지 위에서도 여전히 당당하게 살아 숨 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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