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에서 돌로 빚어낸 무덤 건축의 거대한 혁신과 공간 배치 — 국립나주박물관 제공 자료 책자에 수록된 ‘나주 반남 3호분 일원 고분 분포 및 내부 무덤 구조(독널에서 돌방무덤으로의 전환)’ 도해 전경 (국립나주박물관 제공 자료). ​기획 연재 제22부의 역사적 전환점을 시각적으로 증명하는 이 자료 책자 촬영 사진은, 영산강 유역 고대 마한 사회의 장송 의례가 거대한 항아리 형태의 '독널(옹관)' 중심에서 단단한 돌로 방을 쌓아 올린 '돌방무덤(석실묘)' 체제로 진화해 가는 고고학적 지층의 흐름과 3호분 일대의 무덤 위치를 알기 쉽게 보여준다. 시대의 바람에 따라 무덤의 양식은 진화하였으나, 그 내부에 스며 있는 지배자들의 엄숙한 위엄과 영원불멸을 향한 갈망은 조금도 바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최고의 역사적 도해 자료이다. 사진=정웅남(국립나주박물관제공 자료책자)
독널에서 돌방무덤으로의 역사적 대전환을 품은 공간. 국립나주박물관 제공 자료 책자에 수록된 ‘나주 반남 3호분(방형 분구, 폭 약 40m·높이 약 6m)’ 전경 (국립나주박물관 제공 자료). ​기획 연재 제22부의 핵심 무대가 되는 나주 반남 3호분은 3세기부터 7세기에 걸친 긴 세월 동안 영산강 유역 마한 사회의 장례 풍습이 어떻게 진화했는지를 보여주는 고고학의 보고(寶庫)다. 평탄한 방형 분구 안에서 나무널·독널·돌널·돌방 등 무덤 40여 기가 무더기로 확인되었으며, 특히 1996년 조사된 돌방무덤 안에서 대형 독널 4기가 함께 놓인 모습이 확인되어 ‘독널 무덤’을 쓰던 세력이 ‘돌방무덤’이라는 새로운 건축 양식을 수용해 가는 과도기의 결정적 순간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이 거대한 무덤 속 돌방에서는 금동신발, 말가춤, 말꾸미개, 관꾸미개 등 화려한 유물들이 출토되어, 흙에서 돌로 무덤 건축의 혁신을 이뤄내며 찬란한 권력을 과시했던 마한 지배층의 위엄을 생생하게 증언하고 있다. 사진=정웅남(국립나주박물관제공 자료책자)
영산강 유역을 넘어선 다채로운 문명의 교류와 독창적 장송 의례 — 국립나주박물관 제공 자료 책자에 수록된 ‘해남 만의총 1호분 및 출토 유물 전경’ (국립나주박물관 제공 자료). ​기획 연재 제22부의 지면을 빛낼 해남 만의총 1호분 자료 사진은, 분구 정상을 기준으로 약 2m 아래에서 발견된 길이 238cm, 폭 78cm 규모의 독널(옹관) 내부와 그 속에서 쏟아진 경이로운 유물들을 증언한다. 이 무덤에서는 사람 인형(인물형)이 장식된 상서로운 동물 토기 모양의 항아리를 비롯해 가야계 뚜껑 있는 굽다리다리발(고배) 조각, 백제 무령왕릉에서 발견된 것과 흡사한 금장식 고분옥 6점, 그리고 포자기로 여러 번 꼼꼼히 감싸인 청동거울 등이 출토되어 대단히 이색적이다. 이는 마한 사회가 영산강 유역의 전통적인 독널 문화 토대 위에서 가야, 백제 등 주변 제국과의 활발한 해양 교류 및 문화적 융합을 이뤄냈음을 보여주는 매우 귀중한 고고학적 증거이다. 사진=정웅남(국립나주박물관제공 자료책자)
깬돌을 쌓아 올린 견고한 돌방 건축과 국제적 교류의 흔적 — 국립나주박물관 제공 자료 책자에 수록된 ‘고흥 길두리 안동고분 돌덧널(석실) 내부 구조 및 출토 유물 전경’ (국립나주박물관 제공 자료). ​기획 연재 제22부의 지면을 깊이 있게 뒷받침하는 고흥 길두리 안동고분 자료 사진은, 해발고도 약 25m의 낮은 구릉 위에 위치하며 전체 길이 36m, 높이 3.6m에 달하는 거대한 무덤의 실체를 보여준다. 전남대학교 박물관이 2006년 조사한 이 무덤은 위에서 내려다봤을 때 사다리꼴 형태를 띠는 돌덧널(석실) 벽면을 두께 약 15cm의 깬돌로 벽돌처럼 10~12단 정교하게 쌓아 올려 건축적 혁신을 보여주며, 벽면에는 여전히 붉은 회칠의 흔적이 선명하게 남아 있다. 특히 시신이 안치되었던 돌덧널 안에서는 백제와 깊은 연관을 지닌 금동관모와 금동신발뿐만 아니라, 중국 후한 때 제작된 청동거울, 외계(外界)의 갑옷과 투구 등 당대 최고급 위세품들이 쏟아져 나와 무덤의 주인공이 동아시아 무대를 누비며 국제적인 활동을 펼쳤던 강력한 마한의 해양 지배자였음을 웅변해 준다. 사진=정웅남(국립나주박물관제공 자료책자)

​영산강 유역 무덤 양식의 일대 변혁, 옹관(독널)에서 돌방무덤(석실묘)으로의 구조적 대전환

​정치적 환경 변화와 대외 교류 속에서 마한 지배층이 선택한 새로운 장송례(葬送禮)와 건축 미학

​형태의 변화를 넘어 반남 왕국의 역사적 적응력과 영원한 자존심을 증명하는 고고학적 이정표

​벼가 익어가는 너른 나주평야와 영산강의 푸른 물결이 굽어보는 반남의 대지 위에는, 수천 년 세월의 흐름에 따라 고대인들이 영원한 안식을 누리기 위해 남긴 무덤들의 거대한 변천사가 겹겹이 쌓여 있다. 지금까지 본지가 대기획 연재를 통해 금동관, 목걸이, 환두대도와 철갑, 마구류, 토기와 옹관, 그리고 은빛 관정식에 이르기까지 마한 지배층의 찬란한 보물과 질서를 파헤쳐 온 가운데, 대기획 연재 제22부에서 집중 조명할 주제는 바로 영산강 유역 고고학 역사상 가장 극적이고 혁명적인 변화인 ‘거대한 대형 독널무덤(옹관묘)에서 돌방무덤(석실묘)으로의 대전환’이다.

​본지가 이어온 대기획 연재 중 대주제 [국보 금동관과 지배층의 찬란한 보물들]의 열 번째 순서인 이번 회차에서는, 수백 년간 영산강 문화의 절대적 상징이었던 옹관 시스템이 왜 거대한 돌방무덤 체제로 전환되었는지 그 역사적 배경과 구조적 혁신의 의미를 현미경처럼 세밀하게 파헤친다.

​영산강 유역의 절대적 상징, 대형 옹관무덤의 장엄한 시대

​고대 영산강 유역(나주 반남·신촌리 고분군 등)을 다른 지역과 구별 짓는 가장 강력한 징표는 단연 거대한 항아리 두 개를 마주 붙여 시신을 안치하던 대형 독널무덤(옹관묘)이었다. 지하 깊은 곳에 거대한 토기 옹관을 묻고 그 위에 거대한 봉분을 얹어 수장의 권위를 드높였던 이 독창적인 장송례는, 어머니의 품 같은 대지 속에서 영혼의 안식을 구했던 마한인들의 깊은 내세관과 고도의 토기 제작 역량이 결합된 위대한 예술품이자 건축적 성취였다. 수백 년 동안 영산강 유역의 지배자들은 이 거대 옹관을 통해 자신들의 신성한 권력과 왕국의 정체성을 드높여 왔다.

​새로운 시대를 향한 건축적 혁명, 돌방무덤(석실묘)으로의 대전환

​그러나 한반도를 둘러싼 정치적 정세가 급변하고 백제를 비롯한 주변 고대 국가들과의 교류와 마찰이 심화되는 역사적 흐름 속에서, 마한의 지배층은 무덤 양식에 있어서 과감한 결단을 내리게 된다. 흙으로 빚은 거대한 항아리 중심의 옹관 체제에서, 단단한 돌판과 돌덩이를 다듬어 사방의 벽을 쌓고 입구를 만들어 시신과 부장품을 안치하는 돌방무덤(석실묘) 체제로의 대전환이 일어난 것이다.

​이 무덤 양식의 혁명은 단순히 무덤을 만드는 재료가 흙에서 돌로 바뀐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사후에 여러 차례 추가로 시신을 모시거나 의례를 치르기 용이한 구조적 실용성을 수용하고, 당대 선진적인 무덤 건축 기술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왕국의 방어력과 사회적 결속력을 더욱 공고히 하려는 지배층의 눈부신 정치적·문화적 적응력이었다.

​형태는 바뀌어도 꺾이지 않는 마한의 자존심, 영원을 향한 질주

​옹관에서 돌방무덤으로 무덤의 겉모습과 구조는 혁신적으로 변모하였으나, 그 지하의 엄숙한 공간 속에 담긴 영산강 무인들의 긍지와 영원을 향한 열망은 단 한 순간도 흔들리지 않았다. 거대한 돌방을 채운 찬란한 금속 유물과 정교한 토기들은, 형태의 변화 속에서도 마한의 지배자들이 지닌 왕국으로서의 품격과 자존심이 면면히 이어지고 있었음을 무언으로 증명해 준다.

​오늘날 국립나주박물관 전시실과 유적 현장에서 마주하는 거대한 무덤들의 변천 과정은, 변화의 물결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자신들만의 길을 개척해 낸 고대 마한인들의 유연하면서도 굳건한 생명력을 우리에게 묵직하게 전해준다.

​[기자 수첩]

​오랜 세월 동안 영산강 유역의 대지를 지켜온 고분군들을 바라보노라면, 흙으로 빚은 거대한 옹관의 품에서 단단한 돌로 쌓아 올린 돌방무덤의 성채로 이어지는 고고학의 대서사시가 눈앞에 펼쳐지는 듯하다. 시대의 바람에 따라 무덤의 양식은 진화하였으나, 그 내부에 스며 있는 지배자들의 엄숙한 위엄과 영원불멸을 향한 갈망은 조금도 바래지 않았다.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새로운 건축적·정치적 혁신을 이뤄내며 역사를 개척해 낸 마한인들의 위대한 발자취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고향 나주의 대지 위에서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꽃으로 살아 숨 쉬고 있다.

​이어질 다음 연재 회차에서도 영산강 유역 마한의 신비롭고 찬란한 문화유산과 역사적 진실들을 계속해서 깊이 있게 파헤쳐 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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