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통 등대라고 하면 파도가 일렁이는 푸른 바다나 고즈넉한 어촌 마을의 선착장 끝자락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전라남도 나주시 영산강변에는 아주 특별한 등대가 하나 서 있다. 바다에서 수십 킬로미터 떨어진 내륙 한가운데, 강바람을 맞으며 서 있는 하얀 빛의 ‘영산포 등대’가 그 주인공이다. 이 등대는 바다가 아닌 강변에 서서 영산강의 영고성쇠와 일제강점기 수탈의 아픈 역사를 묵묵히 증언하고 있는 국내 유일의 내륙 하천 등대다.
국가등록문화재 제129호로 지정된 영산포 등대 앞에 서면 생각보다 아담한 높이 8.65m의 흰색 원통형 콘크리트 구조물이 눈에 들어온다. 이 등대는 밤마다 영산강을 오가는 배들의 길잡이 역할을 했을 뿐만 아니라, 하부 다리에 하천의 수위를 측정할 수 있는 구조를 갖추어 해마다 범람하던 영산강의 수위 관측 기능까지 겸했던 독특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일제강점기 초인 1915년에 건립되어 영산강의 물길이 끊기기 전인 1989년까지 무려 74년 동안 실제로 사용됐다.
지금은 잔잔하게 흐르는 하천처럼 보이지만, 과거의 영산포는 영산강 하구까지 넓은 물길이 열려 있어 바닷물이 드나들고 수많은 무역선이 오가던 호남 제일의 내륙항이었다. 당시 일제는 나주평야에서 수탈한 쌀과 물자를 목포항으로 빠르게 실어 나르기 위해 이곳 영산포 선창을 거점으로 개발했다. 영산포 등대는 번성했던 포구의 상징인 동시에, 우리 선조들의 땀과 눈물이 서린 수탈의 역사를 고스란히 지켜본 산증인이기도 하다.
영산포 등대 주변은 영산강의 바람을 맞으며 역사와 미식을 한 번에 즐길 수 있는 훌륭한 도보 답사 코스로 이어진다. 등대 바로 앞 선착장에서는 과거 영산강을 누비던 황포돛배를 재현한 배를 타고 강바람을 맞을 수 있으며, 등대와 이웃사촌처럼 붙어 있는 영산포 홍어거리에서는 600년 전통의 홍어 문화를 만날 수 있다. 여기에 인근의 동양척식주식회사 문서고나 옛 죽전골목을 함께 둘러보면 영산포가 간직한 근대 역사의 퍼즐이 비로소 완성된다.
바다를 향해 서 있는 화려한 등대들과 달리, 강가에 나지막이 내려앉은 영산포 등대는 화려하지 않아서 더 깊은 여운을 준다. 강물은 흐르고 시대는 변했지만, 여전히 자리를 지키며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이 하얀 등대 앞에서 우리는 100년 전 이곳을 가득 채웠던 사람들의 숨결과 역사의 무게를 가만히 되짚어보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