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단짝인 친구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때때로 우리는 어두운 곳에 있을 때 자신이 묻혔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심어진 것이다.”
나는 그 문장을 몇 번을 되읽었는지 모른다. 묻혔다는 것과 심어진다는 것. 같은 땅 아래 있는 것인데, 단어 하나가 바뀌자 마음이 달라졌다. 한참을 그 문장 앞에 앉아 있었다.
요즘 자식들 이야기를 듣다 보면 괜스레 내 가슴까지 저릿해 온다. 내 자식들, 그리고 그 자식들의 친구들. 모두 40대가 되었다. 그 나이가 이렇게 힘든 나이인 줄 몰랐다. 아니, 내가 40대였을 때도 힘들었던가. 그때는 그저 정신없이 살았던 것 같은데.
자식들은 직장에서 치열하게 살아간다. 성과를 내야 한다는 압박, 위아래에서 오는 스트레스, 불안. 들어보면 요즘 세상이 나의 때와는 다르다. 더 각박하고, 더 빠르고, 쉴 틈이 없다.
“엄마, 요즘 직장 일과 사람들 관계가 너무 힘들어요.”
가끔씩 푸념을 늘어놓을 때면 나는 무슨 말을 해 줘야 할지 모르겠다. “그래도 잘 견뎌야지, 우리도 다 헤쳐 왔던 길이야” 하는 말밖에는. 그런데 그 말을 하고 나면 더 마음이 어두워진다. 자식의 힘든 시간을 대신 살아줄 수도 없고, 짐을 덜어줄 수도 없다. 그저 지켜보는 것밖에는.
더 먹먹한 건, 내 자식들이 또 그들의 자식을 키우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 손주들. 입시와 교육이며, 요즘 손주들을 키우는 일은 내가 자식들을 기를 때보다 훨씬 복잡하다. 아이 하나 건사하며 키워내는 일이 이제는 부모의 온 생을 걸어야 할 만큼 버거운 일이 되었다고 한다. 밤늦게까지 학원 불빛 아래서 손주를 기다리는 자식의 그림자를 보면, 그 막막한 무게를 대신 짊어질 수 없어 그저 가슴이 아릴 뿐이다.
“할머니, 할아버지, 나 요즘 너무 힘들어요. 많이 놀고 싶은데…”
손주가 하는 말을 듣고 있으면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내 자식에게도, 손주에게도 “그래도 견뎌야지”라는 말밖에 못 해주는 나. 세대를 거듭해도 우리는 같은 말을 반복하고 있다.
친구들을 만나면 다들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 40대가 된 자식들 걱정, 손주들 걱정. “우리가 뭘 해줄 수 있는 게 없더라고.” 우리는 고개를 끄덕인다. 그저 밥이나 해 주고, 가끔 용돈이나 쥐어 주는 것밖에는.
우리 나이가 되니 우리도 힘이 달린다. 대신 살아줄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런데 친구가 보내 준 그 문장이 자꾸 생각난다.
묻힌 것이 아니라, 심어진 것이라면.
내 자식들이 지금 겪고 있는 이 힘든 시간도, 손주들이 감당해야 하는 무게도, 그저 끝이 아니라 무언가를 준비하는 과정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씨앗이 땅속 어둠에서 시간을 견디듯이.
나도 그랬다. 젊은 시절 힘들 때는 이게 영원할 것 같았다. 그런데 어느새 여기까지 왔다. 내 자식들도 지나갈 것이다. 손주들도 자기 길을 찾아갈 것이다.
우리가 해 줄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 “잘 견디라”는 말밖에 못 할 때도 있다. 하지만 그래도 우리가 여기 있다는 것, 지켜보고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자식들에게는 땅이 되어 주는 게 아닐까. 씨앗을 품은 흙처럼.
우리 자식들도, 손주들도, 지금 묻힌 것이 아니다. 심어져 있는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새로운 마음으로 일어서는 작은 밀알이 되어 싹을 틔울 것이다. 나는 그것을 믿는다. 그 믿음이 한켠에 안도감을 주고,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운다.
오늘은 자식들에게 전화를 걸어봐야겠다. “힘들지? 그래도 엄마는 너희들이 잘 해낼 거라고 믿어.” 그 말이라도 꼭 해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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