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해록 비. 사진=박옥화
금남정. 사진=박옥화

전남 나주 동강면, 영산강이 한반도 지형을 그리며 장쾌하게 휘어지는 ‘느러지 전망대’에 서면 눈앞의 비경만큼이나 발길을 붙잡는 비석 하나를 마주하게 된다. 바로 500년 전, 죽음의 문턱을 넘나드는 표류 끝에 세계 3대 중국 기행문의 하나로 꼽히는 ‘표해록(漂海錄)’을 남긴 조선 선비 최부(崔溥)를 기리는 기념비다.

성종 19년(1488년), 제주 추쇄경차관으로 재임하던 중 부친상 소식을 접하고 급히 귀향길에 오른 최부는 15일간의 사투 끝에 중국 절강성 임해현 해안에 표착했다. 왜구의 출몰로 극도로 긴장해 있던 명나라 당국은 최부 일행을 왜구로 간주해 죽음의 위기로 내몰았다. 

그러나 최부는 이 극한의 상황에서도 명나라 관리들과 당당히 학술을 논하고 조선 선비의 예법과 자긍심을 잃지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8,800여 리 타국의 길을 돌아 고향 땅으로 귀환했다. 느러지 전망대 곁에 우뚝 선 이 비석은 그가 동강면 인동리 성지마을 출신임을 새기며, 낯선 세계를 정밀하게 관찰해 기록으로 남긴 지독한 선비 정신을 오늘날의 방문객들에게 생생하게 전하고 있다.

단순히 경치를 감상하는 것을 넘어, 전망대 입구의 ‘최부 표해록 비’를 먼저 살피는 것은 느러지 여행의 격을 높여 준다. 비문에 새겨진 그의 행적을 읽고 나서 바라보는 영산강의 물굽이는 예사롭지 않다. 최부에게 이 강줄기는 단절되었던 삶이 다시 이어지는 생명의 통로였기 때문이다. 특히 비석 근처에서 바라보는 ‘느러지 한반도 지형’은 인위적인 가공 없이 자연이 빚어낸 역동적 인 곡선미를 자랑하며, 최부의 강직한 생애와 닮아 있어 더욱 묵직한 울림을 준다. 

최근 이곳은 영산강 종주 자전거 길의 핵심 구간이자 수국 명소로도 각광받고 있는데, 화려한 꽃길 사이로 묵묵히 자리를 지키는 최부의 비석은 방문객들에게 “길은 끝나는 곳에서 다시 시작된다”는 깊은 인문학적 메시지를 던진다.

최부의 발자취를 따라 느러지에서 역사적 사색을 마쳤다면, 인근의 연계 관광지를 통해 나주 여행의 풍성함을 더해 보자. 

먼저 영산강 물길을 따라 이동하면 만날 수 있는 ‘황포돛배 체험’은 표해록 속 긴 항해 끝에 고향 강으로 들어서던 최부의 설렘을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하게 해 준다. 배 위에서 맞는 강바람은 500년 전 그가 느꼈을 안도감을 상상하게 한다. 

이어 과거 물류의 중심지였던 ‘영산포 홍어 거리’에서 나주의 깊은 맛을 음미하고, 조선 시대 지방 관아의 위용을 보여 주는 ‘금성관’과 든든한 ‘나주 곰탕 거리’를 방문해 보자. 최부가 그토록 그리워했을 나주의 맛과 멋을 따라가는 이 여정은, 느러지 전망대의 비석에서 시작된 역사적 호기심을 완벽하게 충족시켜 줄 최고의 코스가 될 것이다.